빌런과 나의 글로리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3

by 미세스쏭작가

연신 터지는 학교 폭력 사건에서 가장 화딱지가 나는 것은 뉘우칠 줄 모르는 가해자들의 모습이다. "기억이 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할 의도 역시 없었지만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합니다.” 구린내 나는 변명에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세상. 역시 직장에서 지독한 괴롭힘을 당 봤다. 어떠한 과도 지 못한 채 그들과 헤어졌에 가끔 쓰라린 감정이 인다. 빌런의 여드름 가득한 얼굴, 덩치, 이름, 언어 습관과 목소리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방관하는 동료들 역시 소름 돋는 한패였다. 빌런이 갑질을 일삼을 때 옆에서 꺄르륵 웃으며 몸을 사리던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우매하게 살고 있을까? "선생님은 백설공주 같아요.", "그냥 '네' 하고 답하세요. 우리까지 힘들어져요." 남의 힘듦을 철저히 외면하는 사람들 틈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갑질에 문제를 제기하는 나는 물러터진 외계인에 불과했다. 모두 잊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다.

덩치 큰 여자 상사 한 명이 과자를 먹으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의 첫 출근 날이었다. 따가운 뒤통수를 애써 외면했지만 와그작와그작 과자 씹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쭈뼛쭈뼛 고개를 돌렸다. 과자 냄새를 풍기며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첫날이라 많이 어색하죠?” 나는 웃으며 괜찮노라고 답했다. 수준 미달의 상는 사냥감을 쫓듯 급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다고요? 에헤이~ 안 되겠네. 다른 친구들은 고생 엄청 많이 했는데 이렇게 책상도 바로 주고 그러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벽만 보고 앉아 있게 했는데. 그렇지. 미지야?

-홍홍홍. 맞아용.

-남자친구 있죠? 미지야. 너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진 이야기 좀 해드려라. 여기 일 엄청 피곤해서 들어오면 다들 깨지거든요. 연애하기 쉽지 않을 건데. 뭐 지금이야 좋겠지만. 나도 여기 들어오고 나서 남자친구랑 헤어졌거든.

-기숙사 말이에요. 예전에는 입사 동기들끼리 이인 일 실로 사용했거든. 그렇게 따지면 원래 이번에 들어온 K 군이랑 그쪽이랑 같은 방을 써야 돼요.


듣자 듣자 하니 보자 보자 하니 나는 가마니. 다들 그 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는 분위기였고 나는 성질을 누그러뜨리느라 안간힘을 썼다. 여기 공기관 맞아? 사기업보다 훨씬 더 지독하네.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남자친구(현재의 남편)와 통화하며 설움을 꾸역꾸역 억눌렀다. “어때? 사람들은 잘해 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질문을 하는 그의 목소리엔 설렘과 우려가 가득했다. 오늘 하루 동안 이 질문을 하려고 얼마나 참고 기다렸을까.

“응. 나한테 관심이 많더라. 다 좋아.”라는 나의 대답에 “정말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남자친구. 깜깜한 기숙사 방에 혼자 남은 나는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출근 첫날의 텃세는 애교에 불과할 정도로 그 사람은 틈만 나면 나를 괴롭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몸만 어른이 돼버린 인간의 나약함을 위해 기도하며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 노력했다. 퇴근하는 나를 붙잡아 일을 시키면 “다른 일도 도와드릴까요?” 남은 손을 내밀었고, 무례한 부탁을 해도 간결히 '네'하고 답했다. 내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사사건건 부딪치기엔 일 자체가 너무 고됐다. 그리고 내공이 이미 만렙이었던 나로서는 그녀가 안타까울 뿐 싫지는 않았다.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평일 오후에 그녀가 시킨 일을 하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질렸다. "우두두둑" 소리를 내며 꺾인 발목은 환장할 통증을 동반하며 나를 목발 신세로 전락시켰다. 본인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다친 나를 더욱 잡아먹으려 드는 그녀를 보니 회의감이 컸다. 몇몇 인간들의 밑바닥을 확인하며 결국 마음이 무너졌다.


-진짜로 다친 거 맞아요?

-다친 척 연기하는 것 같은데.

-바쁠 때 다치면 제 발로 나가야 하는 거 알죠.

-그 XXX년이 다쳤으면서 월급은 따박따박 받으려고 하면 어째?


이건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그녀의 괴롭힘은 가히 챔피언급이었다. 연일 두들겨 맞은 나는 결국 케이오를 당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은 청년부 목사님께서 본인의 자가용을 끌고 남자친구와 함께 나를 데리러 오셨고 나는 그 길로 퇴사했다. 다른 분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모든 짐을 싸서 집으로 복귀하는 길. '차라리 잘된 거야.' 후련하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한동안은 내 의지와 달리 툭하면 밀려오는 패배감을 견뎌야 했다.


당시에 가장 상처가 됐던 건 몹쓸 괴롭힘을 그저 사내문화로 치부하던 분위기였다. “그러려니 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믿었던 동료의 잔인한 위로 역시 충격이었다. 지금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같은 개념도 존재하며 ‘더 글로리’처럼 훌륭한 작품 덕분에 신체 및 언어폭력이 근절되고 있으니 이러한 사회 흐름이 으로 다행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통해 나의 회복 탄력성 지수는 더욱 높아졌고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그 사람만큼 나를 괴롭히는 대상을 만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버텨주는 몸이 있는 한, 든든한 내 사람들이 곁에 있는 한 두려울 것도 없기에.


다리는 여전히 비가 오면 쑤시고 아프지만 마음만은 단단해졌다.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더라도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것, 타인이 겪는 괴로움에 명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된 것. 이것이 나의 '글로리' 한때 동료였던 이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꽃보다 전한길 선생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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