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안정감이 생긴다던데 정말일까?' 결혼 상대를 어떻게 아느냐 만큼 궁금했습니다. 안정감을 얻고 싶어서 결혼했다는 사람들 혹은 결혼 후에 향유한 안정감으로 매우 행복하다는 분들을 보면 동경심이 생겼습니다. 나도 그런 가정을 꾸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분홍 벚꽃이 거리를 수놓던 사 월의 봄날에 예식을 올렸습니다. 드디어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정작 제 마음은 온통 부산스럽고 불안하기까지 했습니다.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에서 전보다 얼마나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들었습니다. 몹시 부끄럽지만 저는 스스로가 인정하는 '슈퍼 마마파파걸'이었고 결혼 직전까지도 아가로 불리던 나약한 인물이었답니다. 그렇기에 주부가 된 저는 평소보다 세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청소, 밥, 빨래, 정리정돈, 집 가꾸기, 회사일. 모든 것을 보란 듯이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아등바등 애를 쓰는데 아무리 공을 들여도 집안일은 거기서 거기처럼 표가 나지 않더군요. 게다가 신혼 초반에는 여유롭게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쏟아지는 경조사와 집들이와 각종 모임들을 소화하며 '이래서 결혼을 천천히 하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힘에 부쳤습니다. 모르고 지냈던 외로움이 찾아왔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면서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의외로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의 신혼부부들이 많습니다. "신혼 생활 어때? 좋아?" 하고 물으면 "너무 바빠. 정신이 없어."라는 답을자주 듣습니다. 예전의 저희가 생각나 진심으로응원하게 됩니다.
신혼 초는 새 가족을 향한 관심이 양가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이고, 챙겨야 하는 식구들 또한 늘어납니다. 내 가정 역시 누구보다 잘 돌보고 싶은데 능란함은 찾아볼 수 없는 때이고요. 그야말로 '안정감 그게 뭐죠?' 하는 불안정 상태로 신혼기를 보냈습니다. 신혼 초기로만 보면 오히려 결혼 전이 훨씬 여유롭고 자유롭고 안정적이었달까요.
안정감은 저절로싹트지 않습니다.
몇 달 동안 혼자 식사를 하면서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바쁜 제가 더 바쁜 남편을 묵묵히 내조했습니다. 정신없는틈 속에서남편은 일을 통해 작은 성과를 이루었고 그때 덩달아 뿌듯하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남자친구라는 호칭이 슬슬 남편으로 안착해 갈 즈음 "너 결혼하고 얼굴이 엄청 편안해 보인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싶었지만 수긍하는 척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을 위한 저만의 루틴이 있었습니다. 이를 꾸준히 행하면서 드디어 안정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잠든 남편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거의 매일 저녁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감사 기도 또한 빠뜨리지 않았고 매일 내가 느끼는 감사한 요소들을 남편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런 대화를 남편도 좋아했지요. 그리고 남편이 자고 있을 때면 그가 탁상 위에 벗어 놓은 안경을 깨끗하게 닦아놓았습니다. 소소하지만 그가 놓치는 것들을 챙겨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아주 작은 노력이 쌓이면서 우리 가정에도 견고한 울타리가 생겨났습니다.
안정감이란 이미 정해진 것에 대해 감사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감정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 내에서 감사, 행복, 평안을 누리는 훈련을 부지런히 한 사람일수록 안정감 높은 가정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안정감은 이러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같은 보금자리로 돌아올 때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 평일 비슷한 시간대에 "나 퇴근했어. 금방 갈게." 하는 남편의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금요일 밤에 침대에 누워서 "우리 내일 뭐 먹을까?" 하는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입이 귀에 걸립니다. 이것이 제가 꿈꾸던 소박하지만 충만한 안정감입니다.
안정감을 얻는 확실한 지름길.
결혼한다고 모두에게 안정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시간과 안정감은 당연하게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크고 작은 노력이 오간 자리에 금보다 귀한 안정감이 쌓입니다. Give and Take의 법칙은 가장 작은 공동체인 부부에게도 중요합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착각할 때 안정은 균형을 잃습니다. 부부 사이의 심리적 안정을 지탱하는 최고의 덕목은 바로 표현입니다. 작은 것도 그냥 넘기지 말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표현해 보세요. 다소 오글거리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핸드폰 충전하듯 꼬박꼬박 챙기시고요. 마지막으로 안정감을 주고받는 최고의 지름길은 내 아내, 내 남편의 굳건한 편이 돼 주는 것입니다. 든든한 내 편이 있는 가정은천국입니다.
결혼한 부부에게 있어 안정감은 너무나 중요한 생의 욕구입니다. 서로의 노력이 적절히 버무려져야 하기에 간단하면서도 어렵고 가치 있는 과제이지요. 사람들이 내게 결혼하고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 물으면 저도 비로소 "안정감"이라고 답하게 되었습니다. 안정감을 누리고 사니 세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 나를 품어주는 가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지요.
작은 것 챙겨 주기, 표현하기, 한 편 되기. 세 가지만 잘 챙겨도 안정감이 가출할 일은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안정감만큼은 풍족하게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