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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ug 03. 2024

웃음 버튼과 사는 재미

웃기지 않아도 웃긴 사람

 연예인 홍진경 씨는 유재석 씨의 웃음 버튼으로 유명합니다. 저도 홍진경 씨가 연예인 중에 가장 웃기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순박하고 솔직하면서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 않아도 폭소하게 되는 면이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배우자에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걸 보면 저의 웃음 버튼 참 관적입니다. 남들이 깔깔거리고 웃을 때 정작  남편은 이게 왜 웃기냐며 의아해합니다. 전혀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웃긴 건 타고난 재능까요. 최측근이 웃수저인 경우 하루하루가 꿀잼의 연속입니다.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가서 겪었던 일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약했던 여행사 버스가 어쩐 일인지 약속 시간이 지도록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무언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습니다. 어렵사리 여행사 직원과 전화 연결이 됐고 담당자에게 따지자 그가 절반의 금액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억울함과 당혹감에 "only 50 percent!?"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분노가 가득 찬 표정으로 "나 좀 바꿔 줘 봐." 하며 전화기를 가져갔습니다. 남편은 중저음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You!! You!!! 어!!? 어!!!!??!!"

 뭐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냐.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호통에 저는 웃다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환불이고 뭐고 너무 웃겨서 더 바랄 게 없는 지경이 되었지요. 웃음 버튼이 눌린 제게 남편이 도로 전화기를 넘겨주자 상대방은 제가 슬퍼서 우는 줄 알고 눈치를 살피더군요. 끅끅.

 남편의 호통(?)에 당황한 남성은 70% 환불을 운운했습니다. 잔꾀를 발휘한 저는 호텔 직원에게 팁을 드리면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달라고 했습니다. 워낙 대규모의 호텔에 묵었던 덕분에 여행사는 우리 쪽 눈치를 보며 액을 돌려줬습니다. 신혼여행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짜릿했던 기억입니다.


 남편의 재밌는 면모를 혼자 알기 아깝다고 말하면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나 하나도 안 웃겨." 유튜브 채널 개설을 권하면 "공무원은 겸업 금지야." 하고 단호하게 철벽을 치는 그입니다. 순수한데 은근 직설적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웃길 때 혼자만 웃지 않는 것이 남편의 웃음 버튼 치트키입니다.

 어젯밤 남편과 함께 달리기를 하러 나갔습니다. 그는 몸을 풀어야 한다며 아파트 단지 내에서부터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다리로 반원을 그리며 걷는데 모습이 흡사 목도리도마뱀 았습니다.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웃음을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옆차기와 앞차기로 다리 근육을 풀기 시작하는데 어쩜 그렇게 엇박자로 상하체가 따로 노는지. 결국  소리로 한참을 웃고야 말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웃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얼른 풀어. 이렇게 하는 거 맞아."라며 저를 채근했습니다. "여보. 그렇게 푸는 거 어디서 배웠어?"라고 묻자 그가 답했습니다. "홍범석 대원." 영상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쑥스럽다며 숨기더군요.


 저는 남편 때문에 웃다가 늙는다고 하고 남편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고 웃기다고 하니 부창부수가 따로 없습니다. 남편과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그는 매사 조심스러웠고 긴장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재미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껴 정도였습니다. 그가 이토록 재밌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교제한 지 이 년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순박함과 진심 어린 태도에 청춘을 걸었던 제 자신을 아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웃음과 사랑은 언제나 한 팀입니다.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해도 웃기지 않습니다. 상대를 좋아하면 작은 행동도 좋게 보이고 웃음이 납니다. 재밌는 사람과 살면 마음에 여유가 넘칩니다. 내 집이 가장 재밌고 즐겁기 때문에 밖에서 재미를 찾 않게 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지요.


 각자의 웃음 코드가 다를 뿐이지 재밌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은 어설프고 능수능란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당신을 편안히 대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혹시 압니까. 그가 숨어 있 당신의 웃음 버튼일지. 딸깍. 버튼만 눌리면 웃음이 나오는 가정에 대해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재미를 찾으며 살았는데 더 이상 무얼 부러워해야 할까 싶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제 이런 질문을 자주 건네셨습니다.

 "요즘 어떠냐. 재미있냐." 며느리인 저는 항시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 너무 재미있어요. 아버지." 그러면 시아버지께서는 "그래. 너희끼리 재미있으면 됐다." 하 따스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아버님의 질문에 담긴 뜻이 이제야 더욱 깊이 헤아려집니다.

 재미는 기분뿐만 아니라 삶의 형편, 성과와 보람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재미를 잃지 않길 바라신 아버님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웃음 버튼과 함께 사니 재미없을 일도 재밌고 재밌는 건 더 재밌습니다. 삶이 각박할수록 당신의 웃음 버튼을 갈고닦고 발굴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마음이 편안한지, 꾸밈없이 웃게 되는지. 어느 순간에 웃음 버튼이 뿅 하고 눌리는지 관심을 늦추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웃음이 통장 잔고를 불려주진 못해도 마음에 영양가는 두둑이 챙겨 준답니다.

웃음 버튼의 정석(유퀴즈 홍진경 님 레전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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