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세스쏭작가 Jul 20. 2024

뒤에서 당신을 높이는 사람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같은 사람

 며칠 전 조카를 데리고 테라스 카페에 갔습니다. 주변이 어찌나 조용하고 한적한지 지나가는 강아지의 발소리까지 들렸습니다. 고요한 평화를 느끼며 커피 한 모금에 달콤한 크림빵을 베어 물었습니다. 그때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습니다. A는 침대 위에서 이렇게 하고, B는 저렇게 해서 모텔 비용이 아깝고, C는 내가 이렇게 하면 저렇게 반응한다. 남성 두 명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찌나 즐거워하던지 맨 정신에 듣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엄마께서도 외설적인 내용에 애써 표정 관리를 하셨습니다. 조카가 듣지 않았으면 해얼른 자리를 옮기고 싶었으나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좋니? 재밌니?' 저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들에게 레이저를 쏘았습니다. 저의 반짝이는 눈총을 받은 이들은 고맙게도 곧 목소리를 낮습니다. 놀랍게도 엄마께선 그중 한 명의 직장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A와 B와 C는 그가 이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을까 문득 궁금했습니다.


 한 번은 버스 안에서 덩치 큰 남성이 여자친구와 간드러지게 통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친구들과 버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는 말끝마다 공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공주야. 밥 잘 챙겨 먹고. 그래. 알았어. 공주야. 이따 전화할게." 목소리가 남달리 컸던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친구들에게 이렇게 푸념했습니다. "이 X은 공주라고 불러주니까 지가 진짜 공주인 줄 아네? 아우. 귀찮아." 남자의 덩치가 모래알보다 작아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전화가 아직 끊기지 않은 상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세 보이고 싶단 욕망이 사람을 추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저급한 언행은 당사자는 물론 그를 믿고 만나는 사람까지도 함께 추락시킵니다.


 위의 사례들처럼 자극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인을 낮잡아 평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습관으로 굳어지면 결국 곳곳에서 잡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가까운 내 사람을 폄하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믿음직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배우자 앞에서 매사 조신하며 말을 예쁘게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이 없는 곳에서 항상 남편을 하인처럼 묘사했습니다. 시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좋지 않게 느껴져서 몇 번 나름의 충고를 했습니다. 그녀는 저의 언중유골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친구에게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약속한 배우자에게도 진솔치 못한 사람이 어찌 우정이라고 다를까요. 아니나 다를까 제 예감은 적중했고 저는 두말없이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앞뒤가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내면이 튼튼하고 강한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친구들이 나를 팔불출이라고 여길까 매사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남을 밟고 그 위에 올라서서 어설프게 센 척을 하지도 않습니다.

 등 뒤에서 시시콜콜 연인의 자랑을 늘어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 대해 누군가 물어올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여자건 남자건 자기 사람을 제대로 높이고 대우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 있고 멋집니다.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대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체로 통용되는 말이지만 연애를 할 때는 대접받아 마땅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쳐 쓰지 않아도 되는 일반적인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 우선이죠. 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사람을 만나세요.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마음껏 사랑하며 내일을 바라봐도 좋습니다.


 앞에선 공주님, 왕자님 귀빈 대접하다가 뒤돌아서면 "쟤는 나 없으면 안 돼. 귀찮아 죽겠는데 불쌍해서 만나 준다."라는 식으로 태세 전환을 하는 사람은 그게 친구든 연인이든 길게 고민하지 말고 뻥 차버리세요. 영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낼 줄 아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앞뒤가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사실상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일단 매사에 센 척하는 사람부터 거를 것. 가장 가까운 친구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하고 질투하는 사람을 멀리할 것.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집착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을 만날 것. 사랑의 종착역은 소진이 아니라 채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