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고 신명 나게 학교 생활을 하던 시절 부모님께 연애에 관련된 조언을 종종 들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 반려자를 믿어주고 구속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것.
그리고 또 한 가지, 폭력성이 있는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 것. 화가 났을 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손찌검을 하는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나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잘 알겠다고 약속하면서 '설마 그런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이 왜 그런 충고를 하셨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자기 화를 못 이기는 사람, 분노에 차면 물건을 부수거나 자해를 하는 사람, 연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찬란한 연애사를 SNS에 자랑하는 커플, 자신의 주특기가 남자친구 뺨 때리기라는 상사, 술만 먹으면 남들에게 시비를 건다는 친구의 연인 등등.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난투극인 다양한 연애사를 보면서 새삼 놀랐습니다. 저 또한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일화가 있는데요.
오래전에 헤어진 엑스 놈이 제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와 전화를 걸었습니다. 티끌만큼의 미련도 남지 않았던 저는 전화 통화를 거부하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가족들 모두 자고 있으니까 문자로 이야기해." 엑스는 무작정 얼굴 좀 보자며 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답했습니다. 불편하니 어서 돌아가 달라고 재차 말했지만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에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파트 현관에 나간 저는 오금 저린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엑스가 남기고 간 부서진 물건의 파편들을 보면서 헤어지길 정말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연인의 치명적인 단점을 떠안고 가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관계를 두둔합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딱 하나만 고치면 되는데." 경도와 빈도를 떠나 남녀 관계에서 결코 눈 감아선 안 되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외도, 데이트 폭력, 악독한 주사등등. 안타깝지만 모두 고쳐질 확률이 희박합니다.
두루 괜찮은 사람을 만나도 왕왕 삐걱대는 것이 연인 관계, 부부 관계입니다.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사람은 고속도로에서 시동이 꺼져버리는 자동차와도 같습니다. 운 좋게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이는 삶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칩니다. 믿음, 자존감, 안정감과 더불어 인적, 금전적, 신체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죽이네, 살리네 치정에 얽힌 사랑을 했던 커플이 있습니다. 헤어지면 너 죽고 나 죽는다던 요란한 사랑이 종식되자 주변에서 축배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여자는 꽤나 괜찮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이전엔 다 좋은데 데이트 폭력이 문제였잖아. 이번엔 다 좋은데 연애가 너무 따분해. 계속 만나는 게 맞나?" 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너 도파민 중독이야? 네가 훗날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길 바라니?" 지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신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생애 최초로 잔잔하고 평연한 연애를 하게 된 그녀가 드디어 결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물론 결혼식의 남자 주인공은 후자입니다. 도파민 중독증을 버리고 마음의 안정을 택한 그녀의 미래를 손뼉 치며 응원합니다.
우리 삶에는 두 가지 손이 존재합니다. 나를 올라가는 삶으로 이끄는 손, 낭떠러지로 데려가는 손. 둘 중 어떤 손을 잡느냐는 오로지 우리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위험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버젓이 세워진 영역에 뛰어드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자유의 목적은 자신을 지키는 데 있으니까요. 연인의 치명적인 단점 하나가 나머지 아홉 개의 장점보다 클 수 있단 사실을 간과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