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충전하는 공간
토요일 저녁 9시 40분. 도서관 운영 종료까지 겨우 이십 분을 남기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가운 봄비가 내리는 주차장은 너무 어두워서 땅이 움푹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며 뒷좌석에 있는 우산을 쓰고 가라 권했다. "괜찮아. 금방 달려갔다 오면 돼." 하고 답하며 빈손으로 차에서 내렸다.
도서관 뒤편의 주차장은 처마가 있는 통로로 연결 돼 있어 딱히 우산이 필요치 않았다. 후다닥 달려 지하 일 층 출입문으로 갔는데 아뿔싸 문이 잠겨 있었다. 자동문과 수동문은 모두 야속하게 꼭꼭 닫힌 상태였다. 결국 사늘한 비를 맞으며 다시 도서관 정문으로 향했다.
옷을 적시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발끝에 무언가 걸렸다. 계단 위에 떨어져 있는 시커먼 물체를 들여다보니 제법 큰 새의 사체였다. 너무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날도 궂은데 뭣하러 이 고생을 하고 있담?' 투덜거리며 도서관 입구에 당도한 나는 비를 툭툭 털어낸 후에 이 층으로 올라갔다.
예상과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열람실에 머무르고 있었다. '늦은 시각까지 다들 열심히네.' 촘촘히 박힌 도서관의 조명들이 내 마음을 밝혔다. 밖은 칠흑처럼 어둡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 열람실은 해가 쨍쨍한 한낮의 분위기였다.
'휴남동 서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든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어도 나를 반기는 책이 가득한 공간.
사계절이 보이는 창가와 푹신한 의자.
무료로 남의 이야기를 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곳.
이만한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늘 밝고 정갈하고 차분한 곳이 우리 동네의 도서관이다. 장서의 정기와 공부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광경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서 도서관에 들어서면 뭐든 읽고 싶고 쓰고 싶어 진다.
나는 총 다섯 권의 책을 빌려 즐거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왔다. 절판이 되어 구하기 번거로운 책을 두 권이나 품에 넣으니 책의 요정에게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의 시체가 있는 계단을 내려올 때는 다시 한껏 긴장이 됐지만 말이다.
도서관에서 머문 시간은 겨우 십 분, 비는 좀 맞았지만 내 마음은 고속 충전 완료! 역시 도서관은 내게 살아 숨 쉬는 휴남동 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