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사님의 무한긍정 삼종 세트

스트레스를 왜 받니?

by 미세스쏭작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한여사님의 무한긍정 삼종 세트를 소개한다.

춥다는 생각을 버려

수족냉증에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나는 겨울나기를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겨울철 칼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며 덜덜 떠는 내게 엄마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깨를 딱 펴. 떨지 말고. 춥다는 생각을 버려!” 그러면 나는 추운데 어떻게 춥다는 생각을 버리고 떨지 않을 수 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추위가 멀리 달아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셨다. 몇 번이나 깜박 속아 시도해 보았으나 한 번도 효과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도 나만큼이나 추위를 잘 타시는 체질이지만 좀처럼 덜덜 떠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다. 어쩌면 우리 한여사님은 생각과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 마녀가 아닐까.

스트레스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마

바깥에서 힘든 일을 겪고 집에 와서 “스트레스받는다”라는 문장을 구사하는 순간 아차!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싶다. “대체 스트레스를 왜 받니? 스트레스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마. 스트레스받는다는 생각을 버려.” 우리 집에서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금기어다. 내가 몇 차례 따지고 들 때마다 엄마는 해맑은 미소로 “야. 나는 스트레스 그런 거 몰라. 나를 봐. 스트레스 안 받고 살잖아.”라는 완벽한 방어전을 펼치셨다. 우리 엄마를 보면 영 틀린 소리는 아니다. 스트레스를 일절 모르고 사신다는 한여사님은 역시 마녀일지도 몰라.

이것 먹으면 살이 안 쪄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기가 돌 때마다 엄마는 먹을거리를 내오셨다. “김치를 좀 먹어 봐.” “절임야채를 먹으면 소화가 될 거야.” 매실차나 소화제가 아닌 음식을 권하시는 엄마께 손사래를 치며 도리도리를 천 번쯤은 해본 것 같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사람에게 고칼로리의 과일과 음식을 권하시는 한여사님의 고정 멘트는 이러하다. “이걸 먹어야 살이 안 쪄. 비타민씨를 섭취해야지.” 살이 절대로 찌지 않는 음식 중에는 요구르트를 한 줄 이상 넣은 생과일주스, 고추 튀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튀김을 먹으면 입가심이 되고 살도 안 찐다니. 마녀들에게나 통하는 일이 분명하다.


무논리와 개그의 조화. 한여사님과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느낀다. 무한긍정의 굴레와 그녀만의 괴상한 논리가 변치 않는 것, 같은 싸움이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 모녀의 사랑과 우정의 비결이다. 동일한 문제로 수년 동안 설전을 벌이면서도 열 번을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때는 엄마가 내 속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낑낑대는 딸의 모습이 안쓰러워 앞서는 조언, 언제든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어미 새의 마음, 이제는 노모가 돼버렸건만 아직도 딸이 추워 보이면 ‘엄마가 옷 벗어줄까?’ 하시며 외투를 당장 벗을 채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숙여해 진다. 깔깔거리고 웃다가도 툭툭 건네는 부모님의 배려와 희생에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강추위도 뜨거운 가슴으로 녹여버리는 그 사랑을 이제는 내가 좀 갚고 살고 싶으니 앞으로 부족한 딸에게 많은 기회를 주시면 좋겠다. 부모님의 농담과 웃음보따리 상자를 활짝 열어보면 그 안에는 늘 농도 짙은 희생과 애환이 있다.

한여사님과 함께 설레는 여행, 또 가고 싶다!
이전 02화또 엘리베이터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