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새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나 왜 울었니?

by 미세스쏭작가

부모님의 이사 하루 전 날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내 잡동사니 짐들을 챙기기 위해 부모님 댁에 들렀다. 결혼 전까지 함께 살았던 낡은 아파트에서 가장 큰 방을 내어주셨던 부모님.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셨지만 돌아보면 넘치게 행복했다. 결혼 후에도 부모님과 나는 걸어서 십 분 남짓한 거리에 살았다. 이러한 환경은 내 마음의 든든한 요새였다.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부모님이나 남동생을 만나는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이 이젠 사라지게 된다니. 엄마 아빠가 대문 앞에 슬그머니 음식을 두고 가시는 일도, 오가며 반려견을 맡기는 편의도, 남동생이 밥 굶지 마라며 던져주고 가던 맛난 김밥을 얻어먹는 일도 이젠 글렀다. 나의 작은 부름에도 응답하던 쌍문동이 한 시절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서운하고 아쉬웠다.

가족들이 드디어 낡은 집을 탈출하여 쾌적한 새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으니 감사하며 긍정회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사 당일 오후가 되었다. 세 식구가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귀갓길에 늘 그러하듯 마을버스가 부모님 댁을 경유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살았던 아파트가 생경했다. 지나가는 길이면 늘 ‘잠깐 들렀다 갈까?’ 고민했는데. 제2의 보금자리였던 이곳에 더는 올 일이 없어졌다. 가까이 살았던 내게 부모님은 자주 전화 하셨다. “딸아.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올래?” 딸은 번번이 거절을 잘도 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궂어서, 날이 적당해서, 바빠서 갈 수 없다는 딸에게 “너 주고 싶어서 장어탕 맛있게 끓였는데.” 이따금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장어탕 안 먹고 싶은데?”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보고 싶다는 말에 철없는 답변으로 응수하면 그만이었다. 부모님 댁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으니까.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당신의 아파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제 여긴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강아지를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노을 맛집인 우리 동네의 경치를 보기 위해 공원 의자에 앉았다. 어째서 오늘은 노을마저 힘이 없단 말인가. 땅거미 진 거리를 자두와 쓸쓸히 거닐었다. 엄마가 다니시는 교회에 따스한 조명이 켜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두가 부모님 에 놀러 가자며 목줄을 끌었다. “자두야. 안 돼. 이제 가족들은 저기에 없어.” 자주 들를 걸 그랬지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나를 덮쳤다.

울보기질이 발동한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청승맞게 개똥을 치웠다. 그 와중에 아롱아롱 남편의 퇴근 버스가 보였다. 얼른 눈물을 닦고 자두와 함께 꼬리를 흔들며 정류장으로 갔다. 남편과 나는 콘서트 장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듯 손을 높이 들고 반원을 그렸다. 환하게 웃으며 남편이 “어떻게 이렇게 도착 시간에 딱 맞춰서 왔어?” 하고 물었다. “텔레파시가 통했지.” 발랄하게 답하는 내게 남편은 별안간 이렇게 말했다. “울었구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안 울었다고 시치미를 떼는 순간 또 눈치 없는 눈물이 나왔다. “여보. 비밀이야. 나 운 거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부모님 댁은 승용차로 삼십 분 거리. 도대체 울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나를 놀리더니 “오늘 저녁에 가 볼래? 하루 자도 와도 좋고.”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을 했다.


두루마리 휴지를 사서 깜짝 방문을 한 우리와 자두를 매우 반갑게 맞아주시는 부모님과 남동생. 새 아파트에서 재회하니 울적했던 마음이 환기 됐다. 어렸을 적 입주했던 추억의 12층 아파트가 생각났다. 부모님의 새 아파트는 몰래 흘린 눈물이 민망할 만큼 좋았다. 충분한 수납공간, 방마다 시원한 에어컨, 좋은 환경과 깨끗한 새 집을 보 눈물을 쏟으며 아쉬워할 이유가 더는 없었다. 앞으로 자주 오겠다고 선포하며 얼른 방 하나를 차지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 남편과 강아지는 코를 골며 자는데 나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아직 커튼이 달리지 않은 창으로 들어오는 불빛이 단잠을 방해했지만 마음은 평안했다. 무사히 이사를 마쳤구나. 부모님의 새로운 거처는 기대 이상이다. '음. 나도 당장에 이사 오고 싶은걸.' 다시 이웃사촌 되기 한번 도전해 봐?’

미세스쏭작가의 새 작업공간. 뜻밖의 핵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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