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또 약국에서 쇼핑했구나? 그렇게 좋으면 아빠가 계속 사용해. (허리가 안 좋은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
아빠: 괜히 샀네. 비싼 돈 주고. 요즘 너 열심히 글 쓴다고 해서 샀는데.
딸: 그래? 그럼 내가 쓸게. 잘 쓸게. 아빠.
동네 약국에 가면 종종 보이던 파란색 물방석이 우리 집으로 왔다. 온라인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셨단다. 꿀렁이는 물방석에 앉아 몇 시간이고 글을 썼다. 방석에 앉을 때마다 아빠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의약품, 영양제, 파스, 화장품에 이어 이번엔 약국에서의 방석 쇼핑이라니. 요즘 큰딸이 글을 열심히 쓴다는 소식에 통화를 할 때마다 “뭐 하냐? 글 쓰냐?” 하고 물으시던 아빠. 오래 앉아 있으면 힘들 것 같아 딸의 허리 보호 차원에서 구매하신 방석이라는데. 어째 허리가 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빠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진다.
약국에서도 쇼핑을 즐기시는 아빠와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몇 정거장씩 걸어 다니시는 엄마. 두 분은 동상이몽의 끝판왕이시다. 엄마가 다섯 식구의 끼니 걱정을 하던 시절에도 아빠는 최고로 비싼 과일을 손에 들고 귀가하셨다. “복숭아 맛있어 보이지? 최고로 비싸고 맛있는 놈으로 달라고 했어.” 얼만데? 하고 물었다가 “헤엑!” 까무러치게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엄마는 극 이타주의이시고 아빠는 마초 상남자이시다.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빠가 요샌 어찌나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지 엄마보다 아빠와 말이 잘 통할 때도 많다.
그런데도 나의 에세이에 아빠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빠와 추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편도 아닌데 말이다. 아빠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에도 이어폰을 끼신 채로 노래를 듣거나 TV를 시청하시느라 바쁘다. 짬나는 대로 개인 운동까지 열심이신 아빠는 한 지붕 아래 온 식구가 모여도 아빠만의 시간과 세상을 즐기시는 분이다. 그래서 아빠는 아빠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노는 광경이 익숙하다.
자식보다 먼저 잦은 연락을 취해 주시는 아빠는 요즘 전화를 거시면 "뭐 하냐?", "아빠 집에 밥 먹으러 안 올래?"라는 말씀을 참 자주 하신다. 보고 싶다는 뜻인 걸 알면서도 "친구 만나.", "배 불러." 하고 곧이곧대로 답했던 내 행태가 한심하고 죄송하다. 다 커서도 예쁨을 듬뿍 받는 자식은 부모님이 차려주신 진수성찬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러 가면서도 어려운 발걸음을 한 사람인 마냥 비싼 척을 했다. 무뚝뚝한 자식들로 인한 허기를 손주와 강아지로 달래시는 아빠를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먼저 전화하고 얼굴도 더 자주 보여드려야지. 요즘 조카와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시면서 크게 웃으시는 아빠의 모습이 보기 좋다. 손주 하니가 볼을 비비면서 뽀뽀를 해줬다, 반려견 자두가 아빠의 팔베개를 하고 아기처럼 잔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하시는 아빠를 보면 참으로 사랑이 많은 분이다.
가수 인순이 님의 아버지라는 노래 가사말을 들으면 아빠 생각에 맘이 찡해진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욱한 성미 때문에 아빠와 다투고 마음이 상하는 날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신은 젊은 시절처럼 우리에게 힘을 과시하고 인정받기를 원하시지만 당신이 약하든 강하든 자랑할 거리가 있든 없든 우리는 아빠를 존재 자체로 사랑한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어떤 형용사와 수식어도 붙지 않는 오로지 아빠 그 자체이다. 어떤 집이든 들춰보면 평온한 가정사만 존재하지는 않을 터. 모든 시간을 딛고 우린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산다. 나를 누구보다 아껴주는 당신이 계셔서, 당신 품에 처음 온 딸이라고 공주처럼 키워주셔서, 여전히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아빠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