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가: 48,980원, 감정가: 10만 원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한 지 오래지만 베란다는 여전히 잡동사니에 잠식된 상태였다. 특정 물건을 찾으려면 홍해를 가르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떡하니 있는 물건도 얼른 보이지 않았다.
남편: 드라이버 어디 있지?
나: 베란다에 있을걸?
남편: 다이소 가서 하나 살까?
나: 베란다에 있다니까?
남편: 나중에 찾아볼게. 사실 지금 안 필요해.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웃프고 답답한 심정이 되었다. 앞 베란다와 드레스룸 창고에 들어가 몇 차례 씨름을 해 봤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버리고 비우기를 반복해도 여전히 어수선한 베란다를 보며 답이 없다고 느꼈다. 수납공간이 없는 집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살림은 늘어나고 베란다는 점차 숨기고 싶은 창고로 전락했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집들이하는 영상을 보다가 스피드랙이라는 물건을 알게 됐다. 젊은 여성은 베란다의 철제 선반을 가리키며 연신 “스피드랙 진짜 좋아."를 외쳤다.
“스피드랙? 우리도 저런 거 사서 베란다 좀 말끔하게 정리해 볼까?”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아니. 필요 없을 것 같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인터넷과 중고시장에서 해당 제품을 검색해 보니 예상보다 가격이 높았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라는 남편의 말에 반쯤 동의하며 그렇게 또 두어 달이 지나갔고 결국 트레이더스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여보. 저것 좀 봐!"
"흐음."
매대에 전시된 메탈랙이라는 제품을 본 남편은 '저걸 집으로 들고 가서 조립해야 돼? 제가요?' 하는 눈치였다. 철제 선반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이리 보고 저리 볼수록 마음에 꼭 들었다. 제법 튼튼한 데다가 높이와 넓이까지 우리 집 베란다에 안성맞춤이었다. "사고 싶으면 사."라는 남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카트에 싣자."라고 답했다. 무거운 철제 선반을 집으로 옮겨 와 조립하려니 막막했다. 하지만 이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역시나 베란다를 정리하는 과정에 있었다. 선반을 조립하느라 고생한 남편은 에어컨이 틀어진 거실에서 편히 쉬게 했다. 아내는 홀로 베란다를 날아다니며 장렬한 전투를 벌였다.
땀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이지만 여름날의 대청소는 한증막에서 체육대회를 하는 느낌이었다. 충분히 비웠다고 생각했건만 버릴 것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당장 찬물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많은 땀을 흘린 후에야 비로소 말끔해진 베란다가 완성 됐다. “짜잔. 정리 마쳤어.” 남편은 넓은 공간이 생긴 베란다를 보더니 연신 "대박"을 외쳤다. 신혼 초기의 베란다가 생각날 만큼 만족스러웠다. 탁 트인 베란다에 유리로 만든 풍경 두 개를 걸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달그랑 춤을 추는 풍경 소리는 힐링 그 자체였다. 하임이(푸들 2세)에겐 없던 취미가 생겼다. 우리 집 강아지는 베란다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바깥 구경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여태 미뤄 왔을까. 볕이 좋은 날엔 베란다에서 이불을 말릴 수도 있게 됐으니 자연 건조기를 추가로 얻은 셈이다.
베란다 확장 공사를 했더라면.
집에 수납공간이 충분했더라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지금보다 훨씬 편해질 거야.
이 모든 끈적이는 후회와 바람들을 단 돈 오만 원으로 날려버렸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나의 노고가 있었다. 요즘 우리 집 베란다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쾌적하다. 물건들 역시 주인님이 호출하면 재빠르게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답한다.
방법을 몰라서, 마음이 없어서 헤맸던 일상의 고통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노란 지폐 한 장으로 베란다 인테리어 공사 효과까지 얻었으니 여간 뿌듯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글을 쓰는 지금 달그랑 달그랑 맑은 풍경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의 노래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공간도 사람도 관심을 주고 사랑으로 품고 살아가면 바뀌는 법이라고.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자족하며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배워 간다.
추신: 메탈랙 하나 더 사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미세스쏭작가. 일절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