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김장생 신인문학상 수상작
깊은 밤, 그는 개 짖는 소리에 깼다. 창문을 열었다. 골목 어귀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늘어선 담장과 지붕의 각들을 풀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는 그의 가슴을 쩍, 갈라놓고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한 번도 개를 기른 적이 없고 흔해 빠진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소리의 여운이 묵직했다. 그날 이후, 그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깨곤 했다.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서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떠들어댔다. 그 소음을 뚫고 날아오는 소리가 그의 귀에서 끈적거렸다. 너도 들었지? 물어보면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아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집에만 계시지 말고 친구분도 만나고 문화센터 같은 데도 나가세요. 요즘은 퇴직하고도 활동들 많이 하세요. 도서관 강좌도 듣고 재능기부도 하고요.”
순간, 울컥했다.
“개 짖는 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무료해서 그런 게 아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서도 아니고. 그건 그냥 사실이란 말이다.”
삼켜도 될 말을 목청 높여 뱉어버렸다. 아들이 벌게져서 제방으로 가는 걸 보고 그의 마음도 불편했다.
환청인가? 이명인가? 아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자신만이 끌어안고 깊은 밤 바람벽에 기대앉아 있을 때면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아 불현듯 겁이 났다. 안약을 넣어가며 책을 읽고, 흥도 나지 않는 노래에 장단도 맞추면서 개 짖는 소리를 애써 떨쳤다.
그러다 찔레를 보았다. 옥상 등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던 저물녘이었다. 앞집 옥상의 푸르른 텃밭 사이로 찔레꽃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어스름 속에서 그게 감실감실 움직였다. 잘못 봤나, 눈을 끔벅거렸다. 찔레 더미는 온몸을 푸르르 털면서 그의 눈앞으로 왔다. 하얀 털북숭이 개였다. 놈은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짖지 않았다. 말간 눈으로 바라보는 흰 개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찔레야, 웅얼거렸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그 개는 순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때부터 찔레였다. 날마다 찔레와 만났다. 등나무 아래서 혹은 난간에 기대서서 앞집 옥상을 보고 있으면 찔레가 어슬렁거리며 그의 시야로 들어왔다. 그럴 때면 죽은 아내와 만난 듯 뜨뜻한 게 차올랐다.
거봐라.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
그 말을 하진 않았다. 아들과 찔레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찔레 때문에 행복해진 그는 찔레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앞집 사람들 때문에 우울했다. 며칠 마음을 도스르고 있던 차에 앞집 여자아이와 마주쳤다. 그는 아이한테 찔레의 흰털이 얼룩졌다고 말했다. 작고 통통한 아이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봤다.
“남의 개한테 웬 관심이죠?”
“온종일 옥상에 혼자 두고 돌보지도 않을 거라면 다른 데 입양 보내는 건 어떠냐? 내가 보호소 같은 데를 알아봐 줄 수도 있다.”
“와. 할아버지가 뭔 상관. 우리 뭉치는 강아지 때부터 내가 쭉 키워온 족보 있는 아이거든요. 우리가 왜 이 집으로 이사 왔는데요. 옥상에서 뭉치를 키워도 된다고 해서 그거 하나 보고 온 거거든요. 글고 보호소라니요. 그런 데 보내면 처음에는 보호하는 척하다가 안락사 시켜버려요. 그딴 데는 절대 보낼 수 없어요. 내가 학교 다니면서 힘들게 키우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뭔 권리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죠? 우리 뭉치는 영리해서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혹시나 옥상에서 떨어질까 봐 학교 갈 땐 펜스 안에 넣어두고 가는데 방치라니요?”
어찌나 또박또박 옳은 말만 쏘아대는지,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겨우 한마디 물었다.
“몇 학년이냐?”
“중이요.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