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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May 24. 2023

산책길에 만난 파트라슈

반려동물에서 유기견으로

퇴근하고도 해가 있고 날이 밝다. 그래서 5월부터 10월까지의 계절을 사랑한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집에 도착해도 날이 훤해 무언가 한 가지 정도 일을 더 할 수 있다. 장을 본다거나 관공서에 가거나 산책을 할 수 있다.


며칠 전 퇴근을 하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한창 물이 오른 초록들은 이십 대 아가씨처럼 싱그럽기만 했다. 반면 한 여름의 초록은 왠지 삼십 대 후반을 달리는 아저씨 같다. 여전히 생기 있고 예쁘기는 하나 그 싱싱한 느낌이 도가 지나쳐 어떤 사고를 저지를 것만 같다. 검은빛이 도는 한여름의 초록은 스포츠 카가 무제한 속도로 아우토반을 달리는 상상을 하게 다.


신록을 눈에 한껏 담고 은 공기를 마시며 귀로는 시냇물이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시원한 소리를 만끽하며 머릿속의 안개와 미세 먼지를 씻어 내리며 걸었다. 사람들도 가벼운 차림으로 삼삼오오 자신들만의 대화를 하며 자신들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여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숲이 짙고 잘 정비된 공원이다. 그러면서도 도심 가운데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일 년 내내 찾는 곳이다. 특히 온화한 계절에는 저녁까지 붐비고 열대야가 찾아오는 여름이면 밤 열한 시가 넘어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다. 늦은 시간 산책을 해도 무섭다는 생각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다.


한참 동안 잘 정비된 공원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제법 큰 개 한 마리가 입마개도 없이, 목줄도 없이 혼자 저만치서 내가 걷고 있는 지점을 돌아보고 서 있었다. 주변에 주인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크기는 어른 허리 정도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로 상당히 큰 편이었다. 흰 털이었으나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인지 회색처럼 보이는 정도까지 되었다. 사나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릴 때 보았던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파트라슈'처럼 보였다.


무리 지어 가는 사람들이 멀리서 보이면 약간 겁을 먹은 듯이 한 자리에 붙박여 서서 돌아보다 눈치를 보다 뛰어서 달아나는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인 없는 개구나', '신고해야 하는데...' 이런 말들을 했다. 동물을 보고 무서워하는 표를 내면 공격 본능을 일깨워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침착하려고 애썼다. 멀리 사라졌던 '파트라슈'가 걷는 내내 가끔씩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주인도 없고 배가 고프면 사나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른 척 집에 갈까 하다가 누구라도 다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에서는 개의 인상, 크기, 현재 나의 위치 등을 묻고 출동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 소방서에서 전화가 왔다. 다시 같은 질문-개의 인상, 크기, 현재 나의 위치를 물었고 출동한다고 했다. 같은 식으로 지구대에서 오는 전화를 몇 통 더 받았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한 통의 전화가 더 왔다.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개는 산으로 달아났다. 공원 사무실에 의논을 하니 공원 관계자들도 알고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흘 후 동물 구조 단체에서 덫을 놓고 구조할 계획이라고 했다.


개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는데 내가 공연한 일을 한 것은 아닐까. 사람도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동물도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야생의 동물을 길들여 가축이 되었다고 해도 언제나 개는 가축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개도 주인 없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개는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굶을 것이고 굶다 보면 사나워지고 사나워지면 사람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안위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이기심은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질문이 얽힌 실타래처럼 따라 나왔다. 반려동물 박사 강형욱 씨는 어떤 답을 줄지 궁금하다.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핑곗거리를 찾아본다. 도심지 공원, 사람들이 늘 붐비는 장소이다 보니 만에 하나의 경우라도 안전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파트라슈'도 구조된 후 좋은 주인이나 단체를 만나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팔자 좋은 개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벌써 한 주일이 지났다. 구조는 잘 되었는지, 아니면 다시 야산으로 달아나 자유를 찾아 떠났는지 궁금해진다. 호기심이 많고 걱정도 많고 실행력까지 만렙인 내가 다시 공원 관리실에 전화를 할 차례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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