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종근 Oct 01. 2022

고맙다, 내 헌신짝들아

졸업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체육복을 꺼내 입었던 건 3년 전 겨울이었다. 전날 세탁기를 돌렸던 오래된 바람막이가 아직 덜 말라 정말 오랜만에 옷에 덮인 먼지를 털어낸 것이었다. 학교 마크와 (여느 외국어고등학교와의 차별화를 꾀했던 것이었는지) 영어로 된 명찰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냅다 뛰는 내 가슴팍을 볼 사람은 없다는 판단에 고민 없이 옷을 걸쳤다. 게다가 어깨부터 소매까지 세 줄에 한 줄이 부족했을 뿐, 시중에 파는 바람막이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으니까. 이런저런 합리화 끝에 체육복을 입고 엄마의 마중을 위해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불행은 삽시간에 뻗쳐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체육복만큼이나 오랜만에 고등학생 때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던 친구였는데, 애인의 손을 잡고 내 앞을 지나다 멈칫. 상황을 무마하고자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양손을 턱까지 올려 양팔로 학교 마크와 명찰을 가려보았지만, 내 체육복은 그 애의 머릿속에서 아예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딴엔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하지만 둘 사이의 긴 공백과 갑작스러운 만남은 잠깐의 안부를 나눌 만한 마음의 여유까지 앗아가기 마련이다. 어색한 인사와 함께 친구와 다시금 멀어졌다. 그날 밤, 나는 약 8년이 지난 후에도 고등학교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벌써 몇 년이 지난 묵은 추억을 들춰낸 것은 엊그제 버린 운동화였다.

 

무얼 버리는 것에 굉장히 서툴다.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무엇을 사거나 대가 없이 받고 나서, 돌이켜보면 그 무언가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운동화도 그랬다. 창피했던 그날보다도 먼저 그 운동화를 신었고, 내 발에 맞게 낡고 닳아준 신발에 애착이 있었다. 하지만 비가 유난히도 많이 왔던 올해 여름은 더 이상 견뎌내지 못했다. 오른발 밑창에 구멍이 나 더 이상 신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신발장을 내려다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던 와중에 옆에 놓인 엄마의 신발도 많이 낡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 신발을 버리지 않고 계속 신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따 두 켤레를 함께 버리겠노라고 말을 꺼냈다. 몇 시간 뒤, 외출하고 돌아와 자연스럽게 운동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자리에 운동화가 없었다. 엄마였다. 집을 비운 엄마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운동화는 의류 수거함에 버려진 이후였다. 영 섭섭한 마음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하는 미련한 생각도 스쳤다. 그리고 지금은 그 헌신짝들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조금 더 미련한 글을 적고 있다.


체육복 말고 원래 나의 운동복도 최소 10년은 된 르까프 제품이다. 어린 내 눈에 비친 당시 우리 집의 형편과 유행에 대한 반발이 더해져 구매했던 검은 바람막이. 누구나 그렇듯 커질 몸을 예상하여 큰 사이즈로 샀던 그 옷은 지금까지도 약간 여유 있게 내 몸을 덮는 운동복이 되었다. 그 옷도 그렇고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은 결국 닳아 없어지거나 버려지겠지? 괜한 의미 부여가 독이 된다는 걸 누가 모르느냐고. 다 가질, 또 다 품어 가꿀 위인은 못 되는 게 가끔은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서, 그게 영 맘에 걸려서 잊히고 버려진 것들에 대해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수고 많았어. 고맙다, 내 헌신짝들아.

작가의 이전글 지키는 게 더 쉬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