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 속으로 ‘시절인연, 시절인연’ 하면서 되뇐다. 그러면 욕심이 조금 사그라든다. 인연이 내 뜻대로 되나. 뜻대로 된다고 해서 좋을 수가 있나. 순리대로 흘러가야 탈이 안 나지. 멀어짐이 맞는 데, 억지로 붙어있다가 서로에게 안 좋은 면만 보여주느니 차라리 보낼 땐 보내주는 게 낫다. 꼭 사랑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마지막 글을 만우절에 쓰더니, 거짓말처럼 무슨 시절 인연이니 이런 말을 꺼내나 싶을 수도 있겠다.
최근에 셰어하우스 재계약했다. 그리고 먼 훗날 떠날 것을 미리 생각하니 저절로 ‘룸메이트들에게 헤어짐을 아쉬워 말고 있을 때 잘하자. 어떤 우연으로 우리가 만나 잘 지냈으니, 헤어질 때도 그렇게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에서 ‘최근 제일 행복한 순간을 묘사하기’라는 질문의 답을 준비했었다. 자기 전에 룸메이트에게 책 읽어주는 순간이 스쳤다. 가끔 룸메이트가 책을 읽어달라 하면 못 이기는 척 읽어주고 싶었던 책을 꺼내서 낭독한다. 메인 전등은 끄고 하얀색 스탠드를 켜고 룸메이트는 벽에 다리를 올리고 부기를 빼면서 내가 낭독하는 걸 듣고, 나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휘리릭 넘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읽는 편이다. 솔직히 나는 책을 소리 내서 읽는 걸 좋아한다. 룸메이트는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고. 어떻게 이렇게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 과거에 나중에 그리울 것만 같이 느꼈던 일이 있었다. 지금은 셰어하우스를 떠났지만, 같이 일도 했었던 뚜씨뚜씨(중국어로 발음하면 이름이 ‘뚜씨’ 이다.)와 어느 날 시간이 맞아서 점심 겸 저녁을 함께 먹었다. 둘 다 쟁여놓은 식량이 없었던 건지 집 앞 편의점 가서 먹거리를 샀던 것 같다. 뚜씨는 즉석밥, 카레, 김치였고 나는 너구리 라면에 김치였나... 몇 마디 주고받으며 밥을 먹고 있는데 문득 ‘이거 나중에 그리울 것 같다.’라고 느꼈다. ‘입주자가 고쳐 쓰는 집’이라며 놀렸던 거실에서 룸메이트 둘이 하얀 식탁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평범한 기억인데 그런 게 하나하나 모여서 셰어하우스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판단에 힘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