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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염세적이고 희망적인 고찰

욕설주의

나는 남들만큼 열심히 살았다. 한의사가 되면 영원한 우주의 근원적 행복이 있을거라 믿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미친듯이 공부했다. 결국 나는 그것을 해냈고 그것은 천국의 시작이 아닌 지옥의 시작이었다. 불과 나는 2개월 정도만 행복했다. 즐겁지 않았다. 죽음도 선택지로 들어올 정도로 염세적으로 살았다. 아무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죽는다. 다 X될 예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다. 어리석은 것들 자기가 X된줄도 모르고 ㅋㅋㅋㅋ 웃고나 있다니. 뭘 성취하든 뭘 해내든 다 똑같이 죽을텐데. 뭘 저렇게 열심히들 하는지 어리석은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나 또한 살아있는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X될 운명에 몰아넣은 우주를 엿먹일 방법은 우주가 내게 부여한 삶을 스스로 끊는 방법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저사람들은 왜 웃지? 이 세상에 자기가 죽는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과거의 나는 왜 웃었지? 그때도 죽을줄은 알았는데… 젠장 그러니까 모순이지. 그럼 그 모순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주가 나를 엿먹일려고 해도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즐긴다면 그게 우주를 엿먹이는 개쩌는 방법아냐? 나는 그때 이후로 모순의 왕이 되기로 했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소리치는 가치가 아닌 내 가치를 찾아나섰다. 페라리의 모순, 무한한 돈의 모순은 거르기로 했고 사랑의 모순 연민의 모순 우정의 모순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무한한 돈의 모순, 페라리의 모순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랑했다. 어차피 우리는 다 틀렸으니까. 뭘 선택하든 다 우리는 죽고 다 우리는 틀렸는데 남을 헤치고 속이고 상처주는게 아니라면 뭔 상관이야. 자기가 재밌다는데. 변태적이게도 진료가 재미있었다. 나는 가장 모순적이게도 사람을 1초라도 더 살리는 가장 모순적인 일을 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내게 사람들이 찾아오는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고마웠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나와 삶의 모순을 함께할 사람도 만났다. 유명한 자린고비인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할 동반 유럽여행을 갔고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평생의 모순을 서약했다. 무한한 성공이라는 문을 박살내서 가능했다. 엿먹어라 우주야. 나는 오늘도 한사람이라도 더 살릴거고 모순을 함께할 동료들과 환자들과 내사랑과 함께 너를 엿먹일거다. 한사람이라도 더 너를 엿먹이게 만들거다. 너가 아무리 우리를 엿먹이려고 해도 나는 즐길거다. 오늘도 행복하다. 우주야 너도 잘자라 엿도 잘먹고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댓글을 보는 당신은 우리 전부는 모순덩어리다. 그래서 아름다운거다. 다 알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래서 아름답지 않은 우주야. 아름다운게 뭔지는 아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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