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은 누가 풀어주나..
요즘은 사춘기 고2딸과 단 둘이 지낸다.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오니 거의 둘만 생활하는 편이다.
가족이란 게 아주 가깝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이인 것 같다.
인도네시아 국제학교 고 2인 딸이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 툴툴대기 시작한다.
<딸> 엄마, 학교에서 온 공문 봤어?
<엄마> 아니.. 아직..
왓츠앱에 단체 공문이 온 것 같긴 하더라만.. 아직 못 읽었어..
<딸>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엄만 공문도 안 읽어보고 하루 종일 뭐 했어?
<엄마> (뭐라?? 에구.. 참자 참아..)...
<딸> (내 휴대폰을 갖고 가서 공문을 펼쳐 보이며) 읽어봐!
<엄마> (속으로 어디서 명령질이야? 하지만 표현은 하지 않고 태연한 척) 내일 갑자기? 단체로 어디 간다고??
<딸>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그니까.. 아.. 몰라..
이렇게 아이는 화가 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딸> 아니. 오늘 갑자기 내일 우리 학년 어디 간대.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습이라나 뭐라나.. 기독 교회랑 무슬림사원 두 군데 간대.. 그것도 옆반은 몇 명만 가고 우리 반은 전체.. 행사진행하는 엘레나 선생님이 내가 옆반 친구들이랑 어디 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를 붙잡고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반도 상관있는 거니까 옆에 가만있었거든? 근데 나보고 가래!! 선생님은 왜 나한테 짜증 내는 거야??
<엄마> 선생님은 그 친구한테 말을 하려고 한 건데 옆에서 니가 안 가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엄마도 눈치 없이 옆에서 그러고 있으면 좀 싫더라..
아뿔싸.. 실수했다.. 여기서부터 아이 짜증이 짜장 곱빼기처럼 두 배가 됐다.
<딸> 아니. 따로 부른 것도 아니고 애랑 가는 길에 선생님을 만났고 어차피 내용이 나랑도 상관있는 거라 기다린 건데 나한테 그렇게 짜증 내는 게 맞아??
갑자기 모든 불똥이 내게로 튄다.
너만 사춘기냐? 엄마도 갱년기다! 버리장머리 없는 것 같으니라고!
너무 화가 나서 나는 한마디 더 한다.
<엄마> 너는 앞으로 너랑 다른 의견 받아들이기 힘들면 엄마한테 의견 구하지 마!
<딸> 엄마는 좋게 설명하면 되는데 왜 짜증 내냐고??
이 대목에서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엄마> 내가 언제 짜증 냈어? 엄마 의견을 말한 거지.. 너는 엄마가 엄마로 보이기는 하니? 엄마와 딸이 절대 동격의 관계는 아니야. 어디서 말을 그 따위로 하니? 예의를 갖춰!
<딸> 내가 언제 엄마한테 막 했냐고? 엄마가 짜증부터 낸 거지!
<엄마> 어디서 학교에서 성질난걸 집에 와서 풀고 있어?
<딸> 학교에서 성질난 거 집에 갖고 온 게 아니라 집에 와서 엄마 때문에 성질난 거거든?
아.. 오늘 새벽기도와 회개는 다 어디로 가고 짜증 내는 아이가 너무 싫어진다...
그리고 또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본다.
내가 남편에게 어떤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거의 상대의 편에서 답을 한다. 마치 내 화를 돋우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누가 봐도 그 사람 잘못인데 그냥 내편을 들어줘도 될 텐데 단 한 번을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지를 않는다.
그럼 난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내가 뭘 바래.. 내편도 아닌 남. 편. 한. 테.. 말을 말아야지.. 넌 뭘 기대한 거니? 참나.. 그렇게 오래 살아도 아직 기대가 남았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그냥 간단히 아이 기분에 장단 좀 맞춰줘도 됐을걸 싶은 마음이 든다.
그나저나 내 기분은 누가 맞춰주나.. 에효..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