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 중에 딸아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서 쉬고 있으라고 한 뒤 나가보니 딸아이가 팔에 깁스를 한 채 앉아있었다. 아내에게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 깁스라니. 충격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빠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첫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팔 왜 그래.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병원 갔다 왔어.
딸아이는 방과 후 활동으로 농구를 하는데, 수업이 끝난 후 다쳤다고 했다. 대문자 I인 부모와는 달리 극 E인 딸은 자주 넘어지거나 부딪히기 일쑤다. 팔다리가 성할 날 없이 언제나 곳곳에 멍이 들어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깁스라니. 뼈에 금이라도 간 것일까.
아마추어처럼 걱정과 원망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딸에게 내비쳤다. 다치치 좀 말라고. 네가 어디 가서 넘어지고 멍이 들 때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아냐고. 반대로 부모가 아프면 네 마음은 괜찮겠냐고. 제발 설치지좀 말고 네 몸 소중하게 챙기라고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딸아이 말을 들어보니 농구하며 다친 게 아닌, 수업이 끝난 뒤 걸어가다가 누군가 흘린 물을 밟고 넘어진 거라 했다. 넘어지면서 팔꿈치가 바닥에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통증이 지속되어 병원에 다녀왔다고.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계속 통증을 호소하자 의사 선생님이 깁스를 해줬다고.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눈앞에 보이는 딸의 모습에 흥분해서 성급히 화를 낸 것 같다. 짜증을 내기보다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우선인데. 굳이 내가 짜증 내지 않아도 딸아이는 충분히 아프고 속상했을 텐데.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다. 하루만 지나면 또다시 학교에 가야 할 텐데. 주말 내내 내리는 비가 딸아이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