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너는 이미 출근해서 병동 앞에 서 있다. 혈액 병동은 여느 내과 병동과는 달라서, 육중한 자동문 두 개를 통과하고, 외부에서 신던 구두를 멸균 처리된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병동에 들어선 뒤, 너는 습관적으로 알코올로 두 손을 소독한다. 자, 이제 하루가 시작된다.
주치의 자리의 컴퓨터는 24시간 켜져 있다. 누구나 언제든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게 전원을 끄지 않는다. 컴퓨터에 앉아 전자의무기록에 로그인한 뒤, 네 앞의 환자 명단을 조회한다. 일요일 하루 동안 신환이 입원하여 환자 수가 늘지 않았는지 빠르게 파악한다. 토요일 하루 종일 당직을 서고, 일요일 점심이 훌쩍 지나서야 퇴근했으니, 네가 병원을 떠나 있었던 시간은 기껏해야 스무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이 무슨 대단한 변화가 있었으랴 싶지만, 병원 안에서의 시간은 바깥 세상보다 훨씬 촘촘하게, 효율적으로 흐른다. 불과 오 분 사이에 사람이 죽고, 사는 세상이다.
이상하다. 너의 환자가 한 명 줄었다. 신환이 없었을 수는 있지만, 어제 퇴원하거나 전동 가는 환자도 없었으니까 변화가 없었어야 맞는데. 네가 손가락으로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다시 세어보지만, 몇 번을 세어도 한 명이 줄었다. 누구지? 너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부재한, 익숙한 이름의 주인공을 찾는다. 아, 그 환자가 없다. 이제 갓 스무 살 생일을 넘긴, ALL (Acute Lymphoblastic Leukemia,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환자, 이름이 뭐였더라. 너는 순간적으로 환자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 아, 이주영 환자. 김주영이었나? 아니, 이주영이 확실하다.
“선생님 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병동의 수간호사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고 있다. 네가 무슨 일이냐 묻자, 그녀는 누가 들을까 봐 조심하는 듯, 목소리를 한껏 낮춘다.
“선생님, 어제 이주영 환자 익스파이어(expire, 사망)하셨어요.”
아, 그래서 환자 명단에 없었군. 네 표정이 어두워지고,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패혈증 쇼크가 온 걸까? 열이 나고 있긴 했지만, 광범위 항생제를 투약한 지 48시간이 경과했고, 생체 징후도 안정적이었는데. 하긴 면역 저하 환자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상태가 나빠져 사망하기도 한다. 수간호사가 너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는다.
“…자살하셨어요, 그분.”
“네?”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리셨대요… 어휴, 어쩜 좋아.”
예상치 못한 말에 네 정신이 번쩍 든다. 자살이라고? 병원에서, 게다가 이렇게 큰 병원에서 투신자살은 흔하지 않다. 물론 병원 내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들은 종종 있다. 하지만 병원은 자해 혹은 자살을 시도할 만한 장비나 시설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예를 들어 여자가 뛰어내렸다는 옥상은, 환자, 보호자는 물론이오, 임직원들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항상 잠겨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글쎄요, 저도 출근하자마자 들어서…”
“네, 일단 알겠어요.”
수간호사는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네가 직접 파악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너는 비활성 환자 명단에 ‘이주영’을 입력한다. 동명이인이 많다. 네가 나이 순으로 명단을 정렬하여 스무 살을 찾는다. 흔한 이름이라 스무 살의 이주영도 많다. 진단명을 훑어 백혈병에 걸린 스무 살 이주영을 찾아낸다. 사망 처리가 된 환자는 더 이상 네 환자가 아니기에, 환자 이름을 클릭하자마자 조회 사유를 묻는 알림 창이 뜬다. 네가 귀찮다는 듯, 아무 거나 선택하고 입력을 누른다. 당직의가 작성한 퇴원 기록이 뜬다.
[옥상에서 떨어진 상태로 발견됨. 3층 내과계 중환자실로 옮겨 심폐소생술 시행했으나 반응하지 않아 사망 선고함.]
짤막한 기록만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스크롤을 내리자, 당직의가 네게 남긴 편지 같은 당직 기록이 보인다.
[주치의 선생님께:
오후 3시 반, 환자가 투신자살을 시도했고, 2층 로비 지붕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두부 등에 외상이 심각했습니다. 거리상 3층 내과계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소생하지 못하였습니다.
환자 보호자(부모)에게 환자 상태(심각한 외상과 삼십 분 이상 심정지 상태 지속되어 소생 가능성 희박함)에 대해서 설명하였으며 보호자 동의 하 심폐소생술 중단하였습니다.
병원 내에서 발생한 투신 사고에 대해서 경찰에 신고하였고, 타살 가능성은 적어 보이나 추후 조사 예정입니다. 병원 법무지원실에서 정규 시간 동안 선생님께 연락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다른 환자들을 더욱 주의 깊게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직의 김OO 배상.]
법무지원실이라… 혹시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되는 건 아닐까, 너는 우려한다. 환자가 우울증을 앓았던가? 너는 환자의 입원 초진 기록을 살피다가, 네가 과거력을 조사할 때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냐고 콕 집어 물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괜스레 찝찝해진다. 중증 질환을 앓는 환자를 맞닥뜨릴 때, 의사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생각되는 과거력은 무시하는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될까?
어제 환자가 어땠더라, 네가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회진을 돌 때, ‘오늘 좀 어떠세요?’라는 의례적인 질문에 환자가 무기력한 얼굴로 ‘똑같아요’라고 말한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재발하여 입원한 뒤로, 그녀는 늘 무기력한 얼굴이었다, 아니, 맨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표정이 많지 않았다.
여자의 병명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었다. 갓 열아홉 살이 된 창백한 얼굴은 젖살이 빠지지 않아 통통했다. 대학생이 되어 한창 캠퍼스를 누비며 청춘을 즐길 나이에, 여자는 혈액 병동에 입원하여 고강도 항암치료를 받았다. 검사에서 암세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다. 불행히도 완전 일치하는 공여자는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반 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다(여자는 외동이라 부모 외에는 이식해 줄 형제자매가 없었다). 이식은 성공적이었지만 이식편대숙주병으로 인한 거부 반응이 심해서, 피부에는 물집이 잡혔고, 간 수치도 정상보다 수십 배 뛰었으며, 심한 설사 때문에 항문이 헐었다. 여자가 거부반응에서 회복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드디어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던 날, 여자가 입원했을 때와 같이 개나리가 피었다. 담당 교수도, 여자의 부모도 몹시 기뻐했다. 특히 여자의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입원 기간 내내 심드렁한 얼굴에 도무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여자도, '이제 다시 보지 맙시다'란 의사의 말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외래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백혈병이 재발했고, 여자는 다시 입원했다. 의료진은 피 속의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서 더 독한 약제로 2차 항암 요법을 강행했다. 여자는 곧 나디르(Nadir, 항암제 투여 후 골수 억제가 최대로 나타나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 의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관용어)에 빠졌다. 인간의 몸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막는 군인 같은 백혈구 세포가 있고, 그중에서도 최전방에서 싸우는 부대가 호중구이다. 나디르 상태에서는 호중구 수가 0으로, 미생물에 맞서 싸울 군인이 하나도 없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환자는 각종 기회감염에 취약해진다.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 여자는 24시간 내내 무균실에 갇혀 지내야 했다. 다른 병동에서 허락되는 병원 내 산책도 여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주 보호자인 어머니 외 방문객도 제한되었고, 멸균 과정을 걸친 밍밍한 병원식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이미 석 달 째 그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 우울하지 않기도 어렵지.’
너는 생각한다. 흘깃 시계를 본 네가 깜짝 놀란다. 이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곧 담당 교수가 올 시간이다. 너는 일단 회진 준비를 시작한다. 다른 환자들의 생체 징후와 밤 사이 이벤트를 파악하고, 교수가 오기 전에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분주하게 일하는 와중에 너는 죽은 환자의 '존재'를 잠시 잊어버린다.
이윽고 교수가 왔고, 평소처럼 회진을 돈다. 다른 병동도 그렇지만, 혈액 병동에서는 유난히 환자, 보호자가 오매불망 교수를 기다린다. 교수가 환자에게 어떠냐 묻고, 환자는 좋다고 대답한다. 너는 가끔 ‘좋다’는 말속에 담긴 모순을 곱씹는다. 좋긴 뭐가 좋은가, 암에 걸려 있고, 독한 항암 치료에 입 안도 죄다 헐었는데. 하지만 의식이 있는 한 환자는 ‘좋다’ 말한다. 몇 분 주어지지도 않는 회진 시간에 사소한 호소로 교수의 시간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반사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사회적 습관이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남아있다. 교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문 용어로 너에게 이것저것 검사나 치료를 지시한다. 그러면 환자도, 보호자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하나라도 정보를 더 얻으려 귀를 쫑긋한다. 교수의 말이 길어지면 혹여나 상태가 나빠진 건 아닐까, 그들의 얼굴에 불안함이 스친다. 그럴 때면 너는 ‘좀 있다 설명해 드릴게요’라고 안심시킨다.
회진이 끝났다. 병동을 떠나기 전 교수가 명단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한 명 빠진 거 같은데?”
너는 아침에 수간호사가 지었던 것과 같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교수님, 그… 이주영 님이…”
“아, 맞다.”
교수도 상황을 이미 전해 들었을 것이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눅 든 너의 어깨를 팡 친다.
“그럴 때도 있는 거야, 네 잘못 아니니 자책하지 마.”
교수의 말에 너는 한껏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지금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까, 너는 가장 적합한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죄책감? 불안? 슬픔? 무력감? 침울함?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교수의 말이 일말의 안도감을 불러일으킨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다. 신환이 입원하기 전, 잠깐의 여유 시간이다. 너는 재빠르게 환자마다 입원 경과를 남기고, 다음 날짜의 처방을 넣는다. 너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의국 치프다. 너는 긴장하며 전화를 받는다. 역시 불안한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 의국 치프는 너에게 건조하게 위로를 건네고, 어제 사망한 환자가 다음 달 모탈리티 콘퍼런스(Mortality Conference, 환자의 사망 케이스를 분석하여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및 의료 과오 개선을 목표로 의사들이 모여 토론하는 회의) 사례로 선정되었다고 알려준다. 아, 바쁜 와중에 환자의 방대한 의무 기록을 요약하여 발표 자료를 만들고 의국 치프와 교수에게 검토받아야 한다. 너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병원에서 환자가 죽었으니 주치의를 비난할까? 왜 우울증을 의심하지 않았냐고, 왜 미리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을 요청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모탈리티 콘퍼런스에서 나오는 질문은 날카롭고, 때로는 힐난하는 어조 때문에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너는 벌써 발가벗겨져 광장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도망치고 싶다.
정말 네가 놓친 걸까, 너는 지난 며칠간 환자의 언행을 다시 떠올린다. 여자는 이미 각종 기회감염에 걸렸고, 하루 걸러, 혹은 매일 열이 났다. 특히 밤이나 새벽에 38도 이상의 고열이 났고, 그럼 당직의는 습관적으로 미생물 배양 검사를 처방한다. 고열에 지쳐 겨우 잠든 여자를 인턴이 흔들어 깨운 뒤 무자비하게 검사를 시행한다. 양팔, 때로는 혈관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양발을 최소 두 번 이상 찔러 채혈하고, 중심정맥관에서도 한 쌍, 그리고 소변과 가래 검체도 얻어야 한다. 원인균을 알아야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할 수 있으니 환자가 힘들어해도 반드시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여자는 최소 이틀에 한 번씩은 두 번 이상 바늘에 찔려야했다.
몸도 아픈데, 잠도 못 자고 주사 바늘에 찔리고, 나오지도 않는 소변과 가래를 받아내는 건 고역이었겠지.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당직의가 여자가 거부하는 바람에 검사를 시행하지 못했다고 노트를 남겨두었다. 다음 날 출근한 너는 당직의에게 전화를 걸어 역정을 냈다. 선생님, 와서 환자 보기는 했어요? 환자가 거부한다고 검사를 안 하면 어떡합니까, 꼭 필요한 검사라고 설득했어야죠. 아, 됐어요, 내가 할게요. 전화를 끊고, 너는 여자를 설득하여 검사를 시행했다. 말이 좋아 설득이지, 반 협박이었다. 안 좋아져도 전 몰라요, 냉랭한 너의 말에 옆에 선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했다. 선생님 말 들어, 얘가 왜 이래 진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여자는 자포자기한 듯 멍든 팔을 내밀었다. 앙상한 팔은 성한 곳이 없었지만, 네가 요령 있게 작은 혈관에서 피를 뽑아냈다. 하나도 안 아팠죠? 네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선생님, 이주영 님 보호자 오셨어요.”
골똘히 생각에 빠진 너를 수간호사가 현실로 호출한다. 여자의 어머니가 손에는 주스 박스를 든 채 죄지은 사람처럼 병동 스테이션에 서있다. 상복 차림이다. 네가 황급히 일어나 여자의 어머니를 맞이한다.
너는 어머니에게, 여자의 객관적인 상태를 다시 한번 설명한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재발했고, 2차 항암 치료는 성공적이었지만, 나디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자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그리고 고민하다가 주치의로서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문장을 내뱉으며, 너는 혹여나 여자의 어머니가 너를 원망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다행히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너에게 죄송하다고 말한다. 뭐가 죄송하세요, 어머니 잘못하신 것 하나도 없어요. 여자의 어머니는 당신이 환자를 주의 깊게 감시하지 못했고, 그래서 여자가 뛰어내렸으며, 여자를 낫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걱정하고 있다. 너는 어머니를 달래주며, 내심 안도한다. 그제야 긴 병간호에 지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 불운한 사건에 잘한 사람, 잘못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어머니를 위로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영이 원하는 대로 퇴원시켜 줄 걸 그랬어요.”
아마도 여자는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하나뿐인 딸이 죽기 전 말한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게 가슴 아픈지,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쏟는다. 너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조용히 화장지를 집어 어머니에게 건넨다. 여자의 어머니는 그 후로도 한참 흐느끼다가 신환이 왔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간호사의 말에 일어섰다. 바쁜 시간 뺏어 죄송해요, 같이 드세요. 한사코 거절하는 너의 손에 주스 박스를 쥐어주고, 어머니는 병동을 떠났다.
오후 여섯 시, 드디어 하루 일과가 끝났다. 막판에 신환이 세 명이나 몰려 정신이 없었다. 오늘 너는 당직도 아닌데 당직실의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 입맛도 없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자살한 여자가, 여자 어머니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내가 그 환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너는 생각한다. 네가 만약 불치병에 걸렸다면, 곧 죽을 거라면. 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여자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쩌면 평생 백혈구 수치가 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여자는 무균실에 갇혀 지내다 결국 기회감염에서 파생된 패혈증으로 죽었을 것이다.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퇴원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교수도, 너도, 여자의 어머니도 늘 여자에게 ‘좋아질 거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당신의 예후는 밝지 않아요. 기존 연구에 따르면 당신의 5년 생존율은 십 퍼센트도 안 돼요. 수개월 내 사망 가능성이 높습니다.“
라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 겨우 스무 살에게.
네가 스무 살에 백혈병에 걸렸고,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면, 너는 치료를 거부하고 바다를 보러 갔을 것이다. 너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특히 해질녘의 바다를 좋아했다. 백사장에 앉아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바닷가에 간 김에, 면역력이 약해진 뒤로 먹지 못했던 회를 실컷 먹을 것이다. 아마도 장염에 걸리겠지만, 열이 나고 배가 아프기 전에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잠들듯이 떠날 것이다. 해변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헤며 죽는다면, 평화롭게 눈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너는 네가, 교수가,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여자가 뭘 원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다는 걸 깨닫는다. 모두 여자의 현재 상태만 궁금해했다. 아픈지, 메스껍진 않은지, 잠은 잘 잤는지, 조금은 기력이 나는지. 여자가 건강을 회복하여 창창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보살피면서도, 정작 살아갈 날들에 여자가 뭘 하고 싶은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는, 교수는, 여자의 어머니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녀를 살리려 했는가.
백혈병이 재발했을 때부터, 여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너를 비롯한 의료진에게 여자는 현대 의학이 극복해야 하는 난제였으며, 어머니에게는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기적 그 자체였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여자가 살아남는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긴 인생, 그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 때문에 여자의 생존은 어마어마한 철학적 의미를 지녔다. 여자가 죽고 사는 문제에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살아야 했다. 생존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그녀는 스스로의 삶에서 배제되었다. 여자는 삶을 상징하는 유기체이자, 염원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도구화되었다. 여자가 느끼는, 호소하는 증상보다 검사 결과가 의료진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심지어 여자에게도 훨씬 중요해졌다. 의도한 정답이 도출될 수 있는가, 이 검사 결과로 인해 도출될 가능성은 얼마나 높아졌는가. 여자는 객관적 분석의 대상이 되어 시시각각 해체되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한다는 집착과 더 이상 그녀의 소유가 아닌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병원에 갖혀버린 육체로부터 탈출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인이 선택한 죽음조차 여자의 것은 아니었다. 발견되었을 때 여자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소생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그대로 그녀를 죽게 놔둘 수 없었다. 환자가 병원 안에서 자살했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면 병원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병원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살리려는 시늉을 하고, 그 행위에 대해서 기록해야 했다. 여자의 마지막 삼십 분은 분 단위로 기록되었다. 오후 3시 12분, 심폐소생술 시행함. 3시 14분, 리듬 체크함. 심정지 지속됨, 심폐소생술 재개함. 3시 16분… 오롯이 병원의 법적인 책임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자는 심폐소생술을 당했다. 당신을 살리려고 한 이들의 노력을 배신한 죄, 어쩌면 현대판 ‘부관참시’가 이런 건가, 너는 허탈함을 느낀다.
꿈속에서 너는 백사장에 누워있다. 몸을 일으키자 저 멀리, 일상복을 입은 주영이 보인다. 그녀는 해변가를 달리며 해맑게 웃고 있다. 갓 입원하여 항암 치료를 받기 전처럼, 숱이 많은 긴 머리가 흩날린다.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다. 혈색이 도는 주영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는 별이, 노을에 반짝이는 윤슬이 뒤섞여 황홀경을 이룬다. 주영의 바다에서 너는 철저히 구경꾼이다. 다시 젖은 모래 위로 누워, 너는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