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는 청각장애인이었어요. 어느 날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여자를 데려왔는데, 하필이면 청각장애인이야, 그럼 그거는… 제정신 박힌 부모라면 좋아할 수가 없어요.
나는요, 사별하고 아들 하나만 바라보면서 살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 여자 혼자 벌어서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식당 아줌마, 가사 도우미, 보모, 인형 눈알 붙이기, 밤 까기…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었어. 그래도 어떡합니까, 나만 바라보는 내 새끼 굶길 순 없잖아요. 손이 부르트도록 일만 했는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나이 들고, 아들 녀석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니까 숨통이 트이데요.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으니까 그놈이 영희를 데려온 거야.
왜 안 말렸겠어요. 머리를 싸고 눕고, 달래도 보고, 연 끊자고 으름장도 몇 번이나 놨지. 아니, 근데 이놈이 귀머거리를 만나더니 지도 귀가 먹었는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뻔질나게 집에 데리고 오는 거야. 차라리 말 귀에 염불을 외지, 미쳐버리겠대요.
그래도 애는 곱고 참했어요. 내가 그렇게 싫은 티를 내는데,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적이 없었어. 말을 못 하니 사근사근하게 굴진 못해도, 그렇게 옆에서 맴돌았어. 내가 콩나물 다듬으면 지도 옆에서 거들고, 상 차리고 있으면 물 따르고 수저 놓고. 다 먹고 나면 지는 설거지 하고, 아들은 과일 깎고. 귀찮다고, 저리 좀 가라고 떠밀어도 그냥 좋다고 웃으면서 서 있어요. 하루 이틀 지나니까 마음이 열립디다. 그렇게 예쁜 짓을 하는데, 곁을 안 내주고 배겨.
나도 피도 눈물도 없이 모진 사람은 아니에요. 살다 보니 억척스러워진 거지. 그리고 고생하면서 키운 아들, 부잣집에 장가보내진 못해도 어미 욕심에 멀쩡한 여자 만났으면 바랐던 거지.
나는 반년, 아니, 몇 달도 못 버텼어요. 허락하자마자 냉큼 식 올리고 둘이서 살림 차립디다. 그렇게 반대해 놓고, 그래도 식장에서는 눈물이 났어요. 아들 장가가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내 몫은 다했다, 장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나는 알잖아요? 그 긴 세월 고생한 내가 가엽고 대견해서 펑펑 울었지.
그렇게 결혼시키고, 몇 년은 정말 좋았어요. 나 혼자 있다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들이 신혼집을 가까운데 얻어서 자주 왔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꽃구경도 가고. 저 둘이 걸으면 될 텐데, 꼭 나를 중간에 두고 셋이 손 잡고 걸었어요. 처음엔 쑥스럽고 그랬는데, 익숙해지니까 참 따뜻합디다. 아들 손 잡고, 며느리 손 잡고.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글자도 겨우 읽고 쓰는데, 며느리가 말을 못 하고 수어 밖에 못 쓰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더듬더듬 인터넷으로 동영상 찾아서 몇 개 배웠어. 잘은 못해요, 단어 몇 개랑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렇게 몇 줄 외웠지. 그래도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며칠을 연습했는지 몰라. 어느 날 모른 척하고 수어로 말을 걸었는데, 영희가 울대요. 하긴, 지도 얼마나 서러웠겠어. 속도 모르는 아들은 옆에서 손뼉 치면서 좋아하는데, 내가 미안해서 영희를 끌어안고 울었어. 그때 처음 깨달은 것 같아요. 아, 이제 내 식구다, 내가 거둘 내 식구.
큰 돈은 없었어도 저 둘이 열심히 일해서 저축도 하고, 알콩달콩 사니까 보기 좋았어. 이제 손주만 하나 보면 더 바랄 것도 없겠다, 싶었는데… 그만 아들이 죽어버렸어요. 알고 보니까 아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비 오는 날 술 쳐마시고 운전하던 놈 차에 치어서… 자식 앞세운 어미 마음이 어떤지 알아요? 사람들은 몰라, 알 턱이 있나. 왜 단장의 슬픔이라고 하잖아,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슬픔이라고. 정말 그래요. 가만있어도 창자가 베베 꼬이고, 누가 꼬챙이로 배를 쑤시는 거 같아. 울고 울다 까무러치고… 눈 뜨면 또 저리고 또 아파. 이대로 콱 따라 죽고 싶은데, 마음대로 죽어지지도 않았어. 나는 평생 아들 하나 보고 지금까지 살았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린 거야. 장례 치르고 몇 달은 기억도 안 나요. 그냥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아.
그렇게 아들 떠나보내고, 텅 빈 껍데기처럼 지내는데, 영희가 자꾸 찾아오대요.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왔어요. 말을 못 하니까 와서 무슨 대화도 없어. 그냥 참외 사들고 오면 깎아주고, 복날이면 지가 삼계탕 끓여서 같이 먹고. 그렇게 몇 시간 있다가 또 가고… 처음엔 꼴도 보기 싫었어. 내 아들 잡아먹은 년이라고 그런 건 아니고, 영희를 보면 자꾸 아들이 보이는 거야. 살만하면 찾아와서 생각나게 하고, 또 그립게 하고…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좋은 소리가 안 나왔어요, 넌 왜 자꾸 오냐, 사람 힘들게. 이제 그만 와라. 와도 예전처럼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는데, 영희가 계속 와요. 지가 외로워서 그러나, 아님 내가 불쌍해서 그러나…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결혼 반대할 때처럼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있는 거예요. 근데 사람이 너무 힘들잖아요? 그 와중에 옆에 누가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기대게 되더라고. 그렇게 부대끼면서 몇 년을 또 버텼어요. 죽은 아들놈 기일이면 같이 상 차려 제사 지내고, 제사 핑계로 내가 울면, 영희도 따라 울고. 서로 부둥켜안고 달래주면서. 그러다 다음달 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둘이 바람 쐬러 가고, 그랬지.
어느 날부터 영희 얼굴에 그늘이 보이대요.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물어봐도 이 녀석이 가타부타 말을 안 해. 어찌나 답답하던지. 이제 와서 과부 처지가 쓸쓸해서 그런가… 그러다 언제부턴가 발걸음이 뜸해지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문자하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오던 녀석이 연락도 없고, 두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서운하대요, 걱정도 되고.
그러다 영희 생일이었어요. 큰 마음먹고 소갈비찜을 했어. 영희 그게 내가 해준 소갈비찜이라면 사족을 못 썼거든. 이 더운데 불 앞에서 한참 씨름을 했어. 푹 고아서 야들야들하게 만들었지. 요즘 바쁜 거 같으니까 냉장고에 두고 먹으라고 넉넉히 담았어요. 그렇게 보자기로 싸서 집에 갔는데, 영희가 집에 없는 거예요. 퇴근할 시간도 지났는데. 영희도 남편 말고는 친구가 없어서, 평일 저녁에 따로 약속 잡는 애도 아니었거든요. 어디 갔나, 싶어서 아파트 입구에서 문자를 하려는데, 저 멀리서 남녀 한쌍이 걸어오대요. 남자는 누군지 모르겠는데, 여자는 영희였어요. 환하게 웃고 있는.
둘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꽃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남자가 뭐라 뭐라 손짓을 하면, 영희가 방긋방긋 웃어요. 누가 봐도 정분난 한 쌍이었어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고. 둘이 서로 푹 빠져서는, 내가 오도카니 서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파트 화단 뒤로 몸을 숨기고 쳐다보는데, 몸이 덜덜 떨리대요. 가만 보니 남자가 다리가 약간 불편한 것 같더라고. 왼쪽 발을 질질 끌면서 걸으니까, 영희 그게 속도를 맞춘답시고 천천히 걷습디다. 그렇게 아들네 집으로 쏙 들어가버렸어.
난들 뭐 어쩌겠어요, 그대로 집에 왔지. 오자마자 화딱지가 나서 싱크대에 소갈비찜을 전부 부어버렸어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어딜 감히, 어디 제까짓 게. 배신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불쌍한 내 아들은 지 먹여 살리겠다고 배달하다가 개죽음을 당했는데, 지아비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딴 놈이랑 붙어먹어? 당장 쫓아가서 그 두 년놈의 머리채를 쥐뜯어놓고 싶었어요.
그동안에 내가 재가를 막은 것도 아니야.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무리 귀 안 들리는 애라도 한창나이에 불쌍하잖아요.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보라고 넌지시 권하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영희 그것이 배시시 웃기만 하고, 별 일이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와서 뒤에서 호박씨를 까? 앙큼한 년 같으니. 텔레비전 옆에 놓인 아들 사진을 보니까, 눈물이 납디다. 불쌍한 놈, 왜 그리 빨리 갔냐, 네 마누라는 벌써 바람났다, 에이그, 이 천치 같은 놈. 그대로 주저앉아서 통곡을 했지.
근데 참 이상하지. 꺼이꺼이 우는데, 예전처럼 울어지지가 않아요. 아들 갓 죽었을 때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울었는데, 지금도 너무 슬픈데, 그때처럼 막 죽을 것 같이 아프지는 않더라고요. 시간이란 놈이 참 얄궂지, 그렇게 힘들어도 살다 보면 살아지게 만들어.
한참 울다가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알겠더라고. 따지고보면 우리 애 죽은 지 벌써 오 년도 더 됐어요. 그 세월을, 영희가 옆에 있어줬구나. 그래서 내가 살았구나... 지 남편 죽었으니, 사실 나도 이젠 남이니 그럴 필요 없었는데. 지가 옆에 누가 필요해서 찾았든 어쨌든, 옆에 영희라도 있어서 내가 산 거예요. 아니었음, 나도 진즉에 아들 쫓아갔지. 자식 앞세운 과부가 살아서 뭐 해. 하긴 영희 저라고 안 외로웠겠어요? 한창 나이에, 얼굴도 예쁘장하니 들이대는 놈 하나 없었겠냐고. 오 년 동안 연애도 한 번 안 하고, 죽은 남편 어미를 챙겨줬는데, 그걸 몰랐네. 나도 참 둔한 년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괘씸하다가도 참 미안하고 고맙디다.
며칠 있다가, 영희가 찾아왔어요.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니까 여기는 안 오겠다 말을 해야 하는데, 지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내내 울기만 하는 거야. 평소 같았으면 답답하게 왜 그러냐, 으악이라도 질렀을 텐데, 나도 엄두가 안 나서 그냥 앉아만 있었어요. 그렇게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가만보니 우리 영희 얼굴이 참 앳됐어. 스물다섯에 시집와서 삼 년 만에 남편 죽고, 이제 오 년 지나서, 해봤자 서른 초반이니까 얼마나 예쁠 나이야. 보송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새삼 무섭더군요. 이 녀석마저 안 오면, 얼마나 외로울까, 또 얼마나 보고 싶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더 있으면 내가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질까 봐, 일부러 모질게 내쫓았어요. 너 가, 이제 그만 와, 다신 오지 마. 너 청승 떠는 꼴 보기 싫어. 영희는 독순술을 써서, 말은 못 해도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거든요. 그렇게 못된 말을 하는데, 애가 안 간다고 버티는 거야. 그렇게 우는 애를 등짝을 밀어서 내보냈어요. 현관문 닫히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어요. 처음으로 얘가 귀가 안 들려서 다행이다 싶었어. 내가 우는 소리를 들었으면, 지는 또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속절없이 착한 앤데.
그렇게 영희 보내고, 몇 달은 시체 같이 살았어요. 삶의 낙이 하나도 없어. 그냥 죽지 못해 살았지. 배고프면 물에 찬 밥 말아서 김치랑 대충 때우고. 찾는 사람도 없었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어요. 그대로 콱 죽고 싶었어.
그러다 아들 기일이 와서, 혼자 음식 해서 납골당을 찾았어요. 유골함 옆에 사진을 보는데, 아들이 참 잘생겼어요. 죽은 지 아비 닮아서 인물이 훤칠했거든. 사진 속에 나랑, 아들이랑, 영희랑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셋이 놀이공원 간 날이었을 거야. 번잡스러워서 안 간다 했는데, 막상 가니까 어찌나 좋던지. 지네 둘이 와서 데이트해도 됐을 걸, 늙은 어미까지 챙겨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뻤어요. 나는 어지러워서 놀이기구는 몇 개 타지도 않았는데, 어린애같이 신난 두 녀석 얼굴만 봐도 그렇게 좋았어요. 먹고사는 게 바빠서 그동안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런 게 행복이구나, 했어. 보고 싶어서 사진 속 아들 얼굴을 한참 쓰다듬다가, 내내 울다가 그러다 집에 왔어요.
그때부터였을 거야. 집에서 청승만 떨면 안 되겠다, 싶었어. 나 혼자 그러고 있으면, 아들도 하늘에서 슬퍼하지 않겠어요? 아득바득 집 밖으로 나갔어. 노인정도 나가고, 교회 나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친구도 사귀었어요. 시니어 교실, 그런 데 가서 노래도 배우고. 그러니까 또 괜찮아 집디다, 또 버텨 집디다.
그래도 명절은 참 힘들어요. 집집마다 결혼한 아들딸이 손주 데리고 온다고 음식 하기 바쁜데, 나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네. 영희 그것이 그래도 명절에는 연락 한 통 줄줄 알았는데, 어찌나 모진지 그 이후로 문자 하나 없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몇 번이나 썼다 지웠어요. 쓰잘데기 없는 짓이지. 죽은 남편 시어미가 먼저 연락하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이제 새 살림도 차렸을 텐데.
그때 끝까지 반대할 걸 그랬어, 괜히 사람 하나 잘못 들여가지고 가슴앓이를 하잖아. 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끊어내는 것도 참 쉽지가 않아. 오늘따라 우리 영희, 그 말간 얼굴이 보고 싶네요. 인연이 뭔지, 왜 그딴 것이 늙은이 인생에 들어와 사람 맘을 흔들어 놓는지.
에이, 요망한 것. 에이, 못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