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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by 김대리

“삼십 대 한국인 여성이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접경에서 실종되어 일주일째 행방이 묘연합니다. 현지 언론에서는 자발적 입성설을 제기했지만, 정부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OO 기자의 보도입니다.”


연주가 사라졌다. 벌써 일주일째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이미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져있다.

내 딸 연주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지각 한 번 한 적 없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다. 그런 애가 갑자기 휴가를 내고 혼자 이스라엘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그전에도 해외여행을 종종 다니긴 했지만, 뜬금없이 웬 이스라엘? 여자 혼자 전쟁 중인 나라에 가는 건 위험하다고 애엄마가 극구 말렸지만, 딸아이가 여간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 이야기>를 읽은 뒤부터 예루살렘에 가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였다며, 몇 날 며칠을 졸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입국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연주는 이미 대사관에서 방문 사전 허가도 받았다며 인쇄물을 보여주었다. 다 큰 성인이 자기 힘으로 여행을 가겠다는데, 아무리 부모라고 한들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목줄로 묶어둘 수도 없고. 아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연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든지, 아니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못 가게 했어야 했다. 내가 바보였다.

애엄마는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 같다. 벌써 며칠 째 곡기를 끊고 전화기만 끌어안고 있다. 강한 척 버티고 있지만, 나도 우리 연주를 생각하면 왈칵 눈물이 난다. 머나먼 타국에서 험한 꼴을 당한 것은 아닐까, 손이 벌벌 떨린다. 태어나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다.


오늘 병동으로 경찰이 찾아왔다. 그는 사직한 최연주 간호사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형사는 최 간호사가 휴가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해서 제가 얼마나 곤란했는데.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병동의 간호사들은 교대 근무를 하기에, 중도 퇴사자가 나오면 근무표 짜기가 어렵다. 이미 다음 달까지 스케쥴을 구상해 두었는데, 최 간호사가 갑자기 사직서를 내서 내 입장이 몹시 곤란해졌다. 후임을 구할 때까지 몇 달만 더 근무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다. 이렇게 무책임한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심 놀랐다. 병원 인사팀에도 문의했지만,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운했지만 그래도 삼 년이나 동고동락한 정이 있기에, 마지막 날에는 조촐하게 송별회도 열어주었다. 그게 불과 열흘 전이었다.

“최 간호사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실종신고가 접수돼서요.”

“실종이요?”

이 간호사가 지나가다 불쑥 끼어들었다. 최 간호사와 유난히 친하게 지냈던 동료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최 간호사는 그만두고 이스라엘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단다. 그런데 뜬금없이 실종이라고? 몸이 근질거리도록 궁금하지만, 경찰에게 대놓고 물어보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며 둘러댈 것이 뻔하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형사님, 이거라도 좀 드시면서 하세요.”

음료수를 내어주며 사근사근하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한창 갈증이 났는지, 거절도 하지 않고 넙죽 받아마신다. 옳거니.

“형사님, 우리 최 간호사한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 저 너무 걱정이 돼서…”

한껏 애처로운 눈빛으로 묻자, 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술술 털어놓는다.

“저도 대사관 통해 들었는데, 최 간호사님이 자발적으로 가자지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검문소에는 의료 봉사를 온 의료진이라고 했다네요. 국제구호 단체를 통한 것도 아닌데, 개인이 어떻게 통과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머, 최 간호사가? 가자지구에? 세상에.

“단순 실종 사건으로 알았는데, 사태가 이 지경으로 커지니 저도 곤란하네요.”

형사는 묻지도 않은 푸념을 늘어놓더니, 최 간호사가 썼던 사물함을 살펴보고, 동료 몇 명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본 뒤 사라졌다.

최 간호사 말수도 없고 조용했는데, 의외로 대찬 면이 있었네… 하긴 나도 대학을 다닐 때는, 어엿한 간호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를 떠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정작 일 시작한 뒤에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까맣게 잊고 잊었지만. 이젠 수간호사가 되어 밑에 딸린 부하직원만 몇 명인지… 이번 생엔 글렀다. 눈을 감고 최 간호사가 하얀 유니폼을 입은 채, 폐허를 누비며 부상자를 돌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불쑥 질투가 솟구친다. 좋겠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젊음과 패기. 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이스라엘 입국 한국인 간호사, 자발적 가자지구 이동 확인>


(예루살렘=OO뉴스) 박OO 특파원 = 이스라엘을 통해 입국한 한국인 간호사 최 모(32)씨의 행적이 확인되면서, 그가 스스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이동한 사실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 외교부와 주이스라엘 대한민국 대사관, 이스라엘 보안당국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 ○월 ○일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후 그녀는 육로를 통해 가자지구 접경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본인의 의지에 따라 국경 검문소를 거쳐 가자지구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당초 최 씨의 실종 신고를 접수했으나, 주이스라엘 대사관이 “납치·인신매매의 정황은 없으며 자발적인 이동으로 확인된다”는 공문을 송부함에 따라 수사 방향을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관계자는 특파원과 만나 “공항과 접경 지역의 CCTV를 확인한 결과 최 씨는 혼자 움직였으며, 가자지구로 들어갈 때도 주저함이나 동요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최 씨가 일하는 병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외신에서는 “하마스가 외국인 의료인을 납치해 가자지구 병원에서 강제 노동을 시킨다”는 소문이 퍼지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하마스는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을 통해 “의료인을 납치하거나 강제로 노동을 시킨 적은 결코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가자지구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최 씨의 신변 안전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와 협조해 추가 정보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지의 불안정한 치안과 폭격 위험 속에서 최 씨가 얼마나 활동할 수 있을지, 또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출근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린다. 액정에 모르는 번호가 뜬다. 보나마나 기자일 것이다.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르고, 무음 모드로 바꾼다. 간호사 하나가 가자지구에 입성한 이후로, 취재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 징글징글하다.

기자들은 늘 똑같은 걸 묻는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그 여자는 망상장애인가요? 종교적 광신인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본 적 없는 환자에 대해 진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는 전화를 받아 정중하게 인터뷰를 사양한다. 초창기엔 어정쩡하게 거절하다 보니 유도 신문이 들어올 때도 있었다. 몇 번 상대해보고 나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상대방이 기자라는 걸 밝히자마자 거절해야 실수가 없다. 보지도 않은 환자에 대한 진단을 섣부르게 내리는 건 위험하다. 종종 언론에 나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쇼닥터’들도 있지만, 그런 행동은 의사의 직업적 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나는 전문가로서 그런 짓은 결코 할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떠들어대기에, 그 간호사에 대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무교이고, 살면서 교회나 절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광신도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많이 떨어지는 셈이다. 부모와 함께 거주 중이며, 1남 2녀 중 장녀라고 했다. 흠, 장녀라... 어쩌면 장녀라는 위치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남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을 수도 있다. 부모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학창 시절 내내 모범생이었고, 학교 폭력 따위에 연루된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유년 시절 트라우마도 딱히 없고. 동료들도 입을 모아 “말수는 적지만 성실하고 친절했다”라고 진술했다. 누리꾼들이 그녀의 SNS 계정을 찾아내고 샅샅이 뒤졌지만, 달리기 동호회에서 찍은 사진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신상을 털어도 그럴싸한 이유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조급해졌다. 기자들이 진단명을 캐묻는 건 결국 이해하고 싶어서다. 새로운 현상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눈앞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행동은 본능적인 방어기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라는, 납득할 만한 꼬리표를 달아 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게지.

진료실 밖에서는 말을 아끼더라도, 혼자 생각에 잠길 때면 그녀의 진단명을 상상해 본다. 양극성장애 1형, 조증 삽화일까? 조증을 겪는 환자는 고양된 기분과 함께, 자신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식의 과대망상에 빠지기 쉽다. 가족과 주변인의 진술을 들어보면 간호사는 조증의 전형적인 증상은 보이지 않은 것 같지만, 말수가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했으니 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며칠 전 이 문제로 학회 동료들과 토론했을 때는 또 다른 해석이 나왔다. 한 동료는 그녀를 취약형 나르시시스트라고 의심했다. 겉으로는 희생과 헌신을 표방하지만, 내심 관심과 인정을 갈망하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간호사가 어느 날 갑자기 가자지구로 떠난 행위,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출이라고 믿었다. 비록 그날의 다수 의견은 조증 삽화로 쏠렸지만, 워낙 달변가인 친구라 그런지, 인격장애를 의심하는 그의 말에 상당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간호사는 정말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을까? 아니면 관심을 갈망하는 취약형 나르시시스트였을까? 사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녀의 동기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외신 뉴스의 화면이 바뀐다. 폭격에 폐허가 된 가자지구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 의사 한 명이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카메라 앞에 서 있다. 그의 얼굴은 지독히 지쳐 보인다. 광대뼈가 도드라질 만큼 말랐으며, 눈 밑에는 깊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눈동자 속에 번뜩이는 기개만큼은 섬뜩할 정도로 결연하다. 의사 뒤로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리고, 이윽고 들것에 실린 부상자가 급히 실려 들어간다.

기자가 다급하게 묻는다.

“최근 한국인 간호사가 가자지구에 입성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녀는 어디서 일하고 있습니까? 또 왜 이런 위험한 곳으로 온 걸까요?”

의사의 얼굴에 피로와 짜증이 뒤섞인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모릅니다. 그녀가 어느 병원에서 일하는지 확인해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간호사는 의료인으로서 자기 양심에 따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 왜 언론은 의료인 한 명의 사연에 이토록 집착합니까? 그 간호사가 왜 가자지구에 왔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앙상한 손가락을 들어 폭격으로 응급실이 무너진 병원을 가리킨다. 건물은 한쪽 벽이 송두리째 사라져, 거대한 인형의 집처럼 안쪽의 참상이 그대로 노출된다. 의료진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부상자들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고, 그 틈에서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어린아이들이 울부짖고 있다. 시트로 덮인 시신 곁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머리를 감싸쥐고 오열한다.

“사람들이 매순간 여기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이, 노인들이 굶어 죽습니다. 폭격으로 병원이 산산조각납니다. 그것이 간호사 한 명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인들은, 아시아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은 가자지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 전쟁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의사가 목소리를 높이며 주먹을 불끈 쥔다. 핏줄이 도드라진 손이 허공에서 부르르 떨린다. 그는 군중 앞에 선 웅변가처럼, 한 치도 쉬지 않고 열변을 토한다. 의사의 목소리가 고조되는 순간, 귀를 찢는 굉음이 터진다. 화면이 요동치며 흙먼지와 잔해가 카메라 렌즈를 뒤덮는다. 인터뷰가 끊기고, 화면은 거친 전파음과 함께 암전된다.




제목 > 안녕하세요, 최연주 간호사의 친구입니다.

작성시간> 202X.0X.0X 21:01 조회수: 230,816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가자지구로 의료 봉사를 떠난 최연주 간호사의 친구입니다. 요 며칠 온라인에서 연주에 대한 온갖 소문과 억측을 접하며, 가슴이 아파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봉사활동에 관심도 없던 애가 영웅 코스프레한다.”
“살면서 기부금 한 번 낸 적 없을 거임.”
“국제 구호에 대해 뭘 안다고 나대냐, 그냥 관종이다.”

연주에 대해서 루머가 계속 퍼지는 걸 보면서, 친구로서 참기 힘들었습니다. 사실과 너무 달라서요.

연주는 바쁜 간호사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난민학을 전공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국제 사회와 인도적 위기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간호대학 시절에도 저와 함께 주말마다 이주노동자 무료 클리닉에서 봉사했고,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환자들을 대하는 친구였습니다.

‘살면서 기부금 한 번 낸 적 없을 거다’라는 말도 사실이 아닙니다. 연주는 사회초년생 때부터 꾸준히 기부해 왔습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행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연주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했다는 걸 압니다. 그런 친구가 지금 온갖 비난에 휩싸이는 걸 보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부디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에 남겨진 연주의 가족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거짓된 비난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보태지는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연주야,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께 연락 한 통 드려줘, 걱정 많이 하셔. 사랑해, 내 친구. 네가 정말 존경스럽다. 몸 건강히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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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52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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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 21:01 응, 다음 주작.

익명 2> 21:01 최 간호사님, 응원합니다!

익명 3> 21:02 진짜 친구라면 못 가게 말렸어야지… 이제 와서 친한 척 오지네.

익명 4> 21:03 한국에도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가자까지 갔냐? 그냥 미친 관종이지.

익명 5> 21:03 쟤 때문에 외교 분쟁 나면 누가 책임짐?




“이스라엘에서 실종된 한국인 간호사 최모 씨. 벌써 실종 보름째를 맞고 있는데요. 여러 정황상 의료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물론 하마스에 의한 납치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 중인 만큼, 아직은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분쟁지역 전문 프로듀서, 이OO 피디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는 이어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며 긴장을 푼다. 사실 긴장이라기보다는 피곤함에 가깝다. 삼십 대 간호사가 가자지구로 떠나고,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다. 자발적 입성이냐, 하마스의 납치냐 온 나라가 떠들어댄다. 내가 분쟁지역 취재를 오래 해 온 것은 맞지만, 해당 간호사나 의료봉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며칠 째 비슷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거절하려 했지만 상사가 찍어 누르는 통에 억지로 전화를 받았다. 청취율을 높이려면 무언가 그럴듯한 설명을 내놔야 한다.

“피디님, 가자지구는 언제까지 취재하셨죠?”

“작년 겨울입니다.”

가자지구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건 작년 겨울이었다. 그 이후로는 전쟁이 시작되어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워졌다. 아, 가자.

가자지구는 결핍의 땅이었다. 전쟁 전에도 전기는 하루 몇 시간밖에 들어오지 않았고, 식량의 대부분은 국제 기구를 통해 배급됐다. 그래도 사람들은 삶의 리듬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 속에서 인간성을 체감했다. 매주 배급일마다 아이들이 긴 줄의 맨 앞에서 장난을 치던 모습을 기억한다. 밀가루 포대를 끌어안고 웃던 소년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사진 찍어주세요!” 하고 조르던 그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무래도 자발적 가담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취재를 여태까지 해 온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아나운서의 질문에 번뜩 정신이 돌아온다. 집중, 집중해야지.
“음… 저 역시 그렇게 보입니다.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스스로 들어간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글쎄요, 거기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실소가 나는 걸 숨기느라 애를 썼다. 내가 어떻게 알아, 걔 엄마도 아니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봐야 그저 추측일 뿐이다. 간호사가 무슨 의도였는지,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언론은 ‘확신’을 원하지만 그런 건 없다. 본인에게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죄다 헛소리다.

나도 궁금하긴 했다. 국제 구호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신분으로, 개인이 어떻게 가자지구로 넘어갔을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의 봉쇄를 강화하면서 검문소를 통과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넘어가는 것보다 어려워졌다. 국경에서 분명히 제지를 당했을 텐데, 그녀는 어떻게 가자지구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니, 하마스에 납치당했다는 소문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무사히 들어갔다 쳐도, 진정한 문제는 들어간 이후다. 가자지구에는 식량이 부족하다. 배고픔에선 의료진도 예외가 아니다. 쏟아지는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제대로 음식도 먹을 수 없고, 폭격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소속이 없다면 보호망도 없고, 그야말로 개인이 위험을 홀로 떠안아야 한다. 그녀는 두렵지 않을까.

“지금 가자지구 내 의료인 사망률이 꽤 높지 않습니까? 최 간호사가 살아있을까요?”

아이씨, 무슨 질문이 이래. 불쑥 짜증이 난다.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의료인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빈번했고, 병원도 폭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살아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죠.”

속으로는 ‘거기 계속 있으면 죽겠지…’라는 냉혹한 생각이 지나가지만, 그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다.
“가자지구에 다시 들어가신다고 했는데, 혹시 가신 다음에도 연결이 되면 소식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의미한 인터뷰가 끝났다. 나는 그곳에 갈 계획이 없다. 다시 간다고 해도, 가자지구로 들어간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자국군이 인솔하는 것을 제외하고 가자지구에 타국 취재진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입국 허가서가 나올 리가 없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남녀노소 두 명만 모이면 간호사에 대해 떠들어댄다. 관종이다, 극단적 이타주의자다, 사이비종교의 광신도다, 한국과 가부장제를 혐오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다, 등등. 어느 하나도 ‘이거다!’ 싶은 명쾌한 해답은 아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위험한 곳에 간 걸까.

어쩌면 사람들의 생각만큼 거창한 이유나 목적의식은 없을 지도 모른다. 지구 반대편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뉴스를 보고도, 태연하게 일상을 보내는 본인의 위선에 질린 걸 수도 있다. 나는 오늘 점심으로 부대찌개를 먹고, 퇴근 후 러닝을 하고 잠드는 평범한 하루를 사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병원이 폭격당하고, 사람이 굶어 죽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거지. 아니면, 진상 환자나 보호자에게 시달리다가 ‘현타’가 왔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그 와중에 병동의 텔레비전에서 가자지구의 뉴스를 접하고 깨달음을 얻는 거지. 한 번 사는 인생, 저런 곳에 가서 봉사하면서 사는 게 훨씬 보람있지 않을까?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간호사로써, 더 숭고한 삶을 찾아 떠난 것일 수도.

‘<시사내일>의 이OO PD입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의료봉사를 위해 떠나신 최 간호사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인터뷰를 해주신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면으로라도 인터뷰를 수락해 주시길,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부디 무사하시길.’

사태가 터지고, 진즉에 최 간호사에게 연락을 구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서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전화는 당연히 꺼져있고, 메일도 몇 통이나 보냈지만 읽지도 않았다. 가자지구에서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걸지도 모른다.

외신 기자들에게 협조를 구해 가자지구의 병원을 촬영한 최신 영상을 모두 돌려보았지만, 최 간호사를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아시안으로 보이는 의료진은 한 명도 없었다. 정보통을 통해 입수한 바로는 나세르 병원에서 일하는 것 같다는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병원에 연락을 취했으나, 당연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확인하지만, 여전히 최 간호사의 연락은 없다. 부대찌개는 무슨, 모두 내 망상일 뿐이다.


언니가 떠난 뒤, 집은 엉망이 됐다. 어머니는 거의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계시고, 아버지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다. 기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이웃들은 마주칠 때마다 수군거린다. 한국에서 결혼을 못해서 남편감 찾아 떠났다는 둥,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둥. 대학생인 남동생은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다. 허구헌날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느라 새벽에나 귀가한다. 결국 어머니 간병과 가사일은 죄다 내 몫이 되었다. 가뜩이나 교대 근무도 정신 없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내년 여름 결혼식 준비도 멈춰야 했다. 남자 친구와 예비 시댁도 못마땅한 눈치다. 이 모든 게 언니 때문이다. 언니가 제멋대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언니 뿐만 아니라 나도 간호사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해도 충분히 불쌍한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데, 굳이 왜 타국의 전쟁터로 들어가야 했을까.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언니의 선택은 숭고한 결단이 아니라, 혼자만 고고한 척하는 위선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다 큰 성인이 자발적으로 의료 봉사를 갔다는데 세상이 끝난 것처럼 구는 부모님도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이 보여준 영상에서 언니는 분명 스스로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했다. 납치도 아니었고,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영상이 합성이라는 둥, 화질이 낮아 언니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둥, 세뇌를 당했을 거라는 둥…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끝없이 만들어냈다. 숨이 막힌다. 언니가 떠난 것도, 부모님이 미쳐가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나저나 어머니 상태가 안 좋다. 식사를 너무 못 하셔서 살이 많이 빠졌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수액이라도 맞춰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간병 휴가를 며칠 냈더니, 수간호사가 따로 면담을 신청했다. 예감이 좋지 않다.

면담실 문을 열자, 맞은 편에 앉은 수간호사가 앉으라며 손짓을 한다. 공기가 무겁다. 나는 자리에 앉아 무심코 웃옷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수간호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좀 어떠셔?”
“어디가 편찮으신 건 아닌데, 식사를 영 못하시고 기력을 못 차리세요. 그래서 병원에 모시고 가려고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치를 보며 잠시 망설인다.

“저... 언니한테서 연락은 없지?”

“네, 없었어요.”

수간호사는 한숨을 쉬며 손에 쥔 볼펜을 몇 번 두드리다가,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근데… 최 간호사 이번에 간병 휴가를 낸 게 그냥 어머니 때문 맞지? 혹시 최 간호사도… 언니처럼 국제 봉사 가고, 그런 건 아니지?”

나는 뜨악해서 수간호사를 바라본다.
“아니에요, 선생님! 절대 아니에요, 원하시면 어머니 진단서도 떼다가 보여드릴 수 있어요.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정색하자 수간호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알지, 알지. 우리 최 간호사 책임감 있는 거 내가 잘 알지. 근데 윗선에서 자꾸 확인하라 그래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이해하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티내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꼭 깨문다.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면담실을 나서는 순간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졸지에 나까지 '관심 사병'이 되었다.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언니 때문에 집안은 쑥대밭이 됐고, 나는 직장에서 의심당한다. 본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는지, 언니는 알까. 언니가 왜 떠났는지는 관심없다. 원래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갈거면 편지라도 한 통 남기고 가든지. 그럼 나도 최소한 기자들한테 시달리지 않고, 부모님도 받아들이기 수월했을 것이다. 혹자는 고결한 결정이라고 떠들어대지만, 혼자만 고결하면 뭐하나, 남겨진 사람들에게 오만 민폐는 다 끼쳤는데. 사람들은 본인의 가족이 아니라고 마음대로 지껄인다.

아, 차라리 언니가 없었더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연주가 실종된 지 62일 째다. 그 사이 애엄마와 함께 이스라엘에 가서 딸을 찾으려 했지만, 입국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날 수록 숨통이 조여온다.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흘 전부터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붉은 피로 “하마스, 나의 딸을 돌려다오!”라고 적은 피켓을 들었다. 서툴지만 번역기를 돌려 “حماس، أعدوا ابنتي إليّ!”라고도 적었다. 외교부와 언론은 연주가 의료 봉사를 위해서 가자지구에 자발적으로 입성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연주는 겁이 많다, 남들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을 뿐. 그런 아이가 자기 발로 그렇게 무서운 땅에 갔을 리가 없다. 내 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무능한 정부는 내 딸을 되찾을 방도가 없으니 말을 지어낸다. 하마스가 연주를 데려갔다. 불쌍한 내 딸이 머나먼 타국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피눈물이 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힘 없는 아비라도 나서야 한다. 땡볕에 하루 종일 피켓을 들고 서있으면,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몇몇 사람들이 안쓰러운 듯 다가와 응원을 해주고, 시원한 물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한 사람이 다가와 다짜고짜 욕을 퍼부으며 삿대질을 할 때도 있다. 어제는 노숙자가 쫓아오는 바람에 황급히 자리를 피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고생은 지금 연주가 겪고 있을 고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딸 연주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나는 멈출 수 없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총선이 끝났다.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최연주 간호사를 이 시대의 나이팅게일로 추대하면서, 귀국하면 비례대표 1번을 주겠다고 떠들어댔다. 야당은 의료인의 헌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비판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인터넷에서는 최 간호사를 두고 정계진출을 노렸다는 둥, 위선자라는 둥 떠들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 간호사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녀를 인터뷰하겠다며 많은 방송사가 이스라엘로 떠났지만, 가자지구 근처도 못 가고 퇴짜를 맞았다. 나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 간호사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역시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자리를 계속 비워둘 수 없던 여당은, 뜬금없이 웬 간호사를 1번으로 내세웠다. 여당 대변인은 최연주 간호사처럼 나이팅게일 정신을 이어가는 영웅이라고 후보를 포장했지만, 당연히 오만 욕을 먹었다. 어쨌거나 여당이 승리하면서, 비례후보도 어부지리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번 선거만큼 간호계가 관심 받았던 적이 있었나.

최 간호사에게 끈질기게 메일을 보냈지만, 그녀는 끝끝내 답이 없었다. 선거가 끝나고, 휴가철이 다녀오면서 최 간호사의 존재도 잊히나 싶을 때쯤, 노벨 위원회에서 그녀를 차기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하루 만에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그즈음부터는 사람들이 드디어 피로감을 느낀 건지, 기사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던 기사가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올라올까 말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다.

겨울이 시작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최 간호사의 존재를 말끔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광화문에서 혼자 1인 시위를 이어가던 그녀의 아버지도 건강상의 이유로 시위를 중단했다고 들었다. 더 이상 출근길에 비통한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피디님, 뉴스 보셨어요?”

출근하자마자 후배가 호들갑을 떨며 휴대전화를 내민다. 가자지구의 나세르 병원이 폭격당했다는 기사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최 간호사는 여전히 나세르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까? 그녀에게 안부차 다시 연락을 취했지만, 며칠 째 수신 확인도 되지 않고, 여전히 답변도 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 죽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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