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장난인지, 운명인지
같이 나눌 관심사가 있으면 빨리 친해진다고 하듯이, 이미 친했던 우리는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매일 달팽이처럼 걸었다. 그것도 양심에 찔리는 것이, 길이 갈리는 횡단보도 앞에 몇십 분씩 서서 어떤 유학원이 별로라더라, 기숙사보단 홈스테이가 좋다더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획이 조금씩 구체화되며, 부모님께 털어놓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예쁘게 키운 딸이 갑자기 거액을 들여 다른 나라에서 살겠다는데 달갑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날부터 난 등골브레이커가 되지 않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전쟁이라는 변수로 역대 최대 환율을 찍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뿐...
사실 내 친구도, 나도, 서로가 없었으면 유학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실현시킬 만큼 대담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용기가 되어 준 건지, 서로에게 기대어 무모한 선택을 한 건지, 당시에는 더욱 헷갈렸다. 그래도 그 덕에 현재의 우리가 될 수 있었으니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그만큼 내가 괜히 휩쓸리는 것은 아닐까, 회피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많이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다.
내가 꺾이지 않을 것을 아셨는지 부모님은 얼마 안 있어 내 결정을 지지해 주시고 열심히 도와주셨다. 그 노력이 없었으면 그냥 자퇴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은 후에도 쉬운 일은 없었다. 학교 선택이라는 엄청난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결심하고 한 달 정도는 별다른 진전 없이 학교를 알아보다 지나갔다. 학교를 결정하고 유학원과 계약을 맺기까지는 한 달 정도 더 걸렸던 것 같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경제적, 심리적 부담에 많이 흔들리고 힘들었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더니...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조기 유학을 갈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유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유학원의 규모나 경력, 방향성 등에 많은 것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학교를 먼저 정할 수도 있는데 그럼 그 학교를 취급하는 유학원들을 찾아보는 순서로 진행된다. 서울에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며 많은 유학원을 돌아봤는데 분위기가 참 다양했다. 어떤 유학원에선 무슨 시험을 보라길래 봤다가 최초로 만점을 기록해 러브콜을 받기도 하고, 어느 곳에선 특별히 부탁해서 마감된 학교에 들어갈 준비까지 마쳤다가 마지막에 무산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시골인 캔자스의 한 사립학교로 결정을 냈다.
다음 날인가, 내 유학 메이트에게 말을 꺼내려는데
"지우야, 나 학교 정했어"
어 너도?
"캔자스에 있는 사립학굔데"
야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