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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07. 2023

토종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중3이 갑자기 외고?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소감은


"헐, 진짜 영어밖에 안 써!"


당연한 소리지만 미국에서는 영어밖에 들을 일이 없다. 가끔 공항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스페인어가 들리긴 하지만, 대체로는 다 영어다. 영어 실력에 자신감이 있었고, 내가 선택해서 오른 유학길인데, 황당하게도 처음 드는 생각은 '나 정말 여기서 살 수 있을까?'였다. 몇 년 전에 떠났던 미국 여행은 한국인 일행이라도 있었지, 같은 비행기로 온 유학생들과 헤어지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시간을 뒤로 감기 해서 처음부터 설명해야겠다. 중3 겨울, 선생님이 고등학교 지망을 써 오라고 가정통신문을 나누어 주셨다. 3학년 1학기까지 '동네 학교 중에 한 군데 가겠지 뭐~'하던 난 2학기가 좀 지나고서야 황급히 고민을 했었다. 생각이 없었... 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에게 열린 길이 그것 말고는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평소에 가장 재미있어했고 가장 잘했던 과목이 영어, 조금 과격하게 발목을 잡는 건 수학이었다. 갑자기 이래서 대학을 갈 수나 있을까 하고 숨이 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가정통신문 제출을 하루인가 앞두고 선언했던 것 같다.


"엄마, 나 외고 갈래!"


그때의 나는 몰랐다. 외고라고 영어만 잘해선 안된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결정이었는데, 아마 외고를 갔다면 수학에 한을 품고 죽은 귀신으로 외고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철없는 딸의 결정을 응원해 주신 우리 부모님은 준비를 지원해 주셨고, 외고 출신인 담임 선생님의 도움까지 받아 어찌어찌 합격했다. 그런데 합격까지 해놓고 뭔가 마음이 뒤숭숭했다. 인터스텔라처럼, 외고생이 된 미래의 내가 보낸 구조요청이었을까?


매일 마음이 불편했다. 합격 통지를 받으면 해결될 줄 알았던 고민들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슬쩍 눈을 돌리다 시야에 딱 걸린 게 바로 '유학'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아니 영어'만' 잘하는,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곳은 미국이 아니겠어? 하고 매일 밤, 조용히 검색창에 '조기 유학', '유학원' 같은 키워드를 쳤다. 외고 교과서도 가져오고, 교복도 맞추면서 머릿속은 온통 미국이었다. 감히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어느 날, 기폭제가 되어줄 친구를 만났다.


"지우야, 나 유학 갈까 생각 중이야"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말인가. 내가 하도 생각을 많이 해서 남 말도 내 생각으로 들리고 그러나 보다 하는데 친구가 쐐기를 박았다.

"미국으로"

소설도 이런 급전개에 클리셰는 안 쓸 것 같지만 그게 내 현실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는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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