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상 밖의 결과는 없었다. 앙상블 리스트에서 나, 그리고 함께 지원한 케이티와 내 유학 메이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날 부터 학교가 끝나면 바쁘게 숙제를 끝내고 7시에서 9시까지 강당에 모여 연습에 매진했다. 미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무대에 설 일이 많아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 듯 했지만 그렇다고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갑자기 얌전해지는 건 아니었다. 캐스트가 큰 만큼 선생님들이 많이 고생하셨지만 조금씩 틀이 잡혀 가는 듯 했다. 문제는 그렇게 느꼈을 때쯤엔 공연이 약 2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워낙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니 학교에서 공연 기간과 가깝게는 시험이나 숙제를 내지 말라는 배려를 해 주셨다. 그러자 선생님들은 No 숙제 No 시험의 친절을 베풀기 위해 연습이 한창일 동안 숙제와 시험을 마음껏 끌어다 주셨다. 참...감사한데 눈물이 났다. 저녁에는 음악실에 둘러앉아 단체곡을 연습하기도 하고 강당에서 두 시간 내내 춤을 배우기도 했다. 어려워도 매번 뛰는 가슴으로 보고만 있던 공연의 제작 과정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마냥 재미있었다. 꼭 어릴 때 상상하던 것처럼, 정말 좋아하는 동화책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케이티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매일 보이는 달이 참 예뻤던 기억이 난다.
뮤지컬에 직접 참여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관람객일 때는 눈앞의 주연 배우들에 집중하게 되지만, 공연 딱 한번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이 들어가 있다. 대본과 노래가 해결된 우리 공연 같은 경우에는 안무가, 연출가, 음악감독, 의상과 소품 담당자, 반주자와 밴드, 거기에 아이들을 통솔하는 선생님이 필요했다. 주조연 배우들, 앙상블 배우들, 그리고 주조연이 아프면 대체해 주는 스윙 배우들의 노력이 있었고, 배경을 만들고 꾸며준 팀, 조명과 음향효과를 해결해 줄 분들, 무대 소품과 세트를 옮겨 줄 팀 등등 다 셀 수도 없다. 이 모든 노력이 모여서 모자이크 작품처럼 하나의 공연을 완성시켰다.
공연 당일 날 아침이 밝았다. 의상 담당 선생님이 제발 아무 운동화 말고 컨버스를 신고 오라고 애원하셔서 새로 산 컨버스를 신고 제니의 도움을 받은 진한 무대화장을 했다. 머리는 포니테일에 스프레이로 고정했다. 학교에 도착해 <그리스>의 시대인 50년대에 어울리는 분홍색 스키니진과 흰 티셔츠를 입었다. 밝은 초록과 파랑의 스카프를 목에 감고 북적거리는 무대 뒤 통로를 뚫고 무대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누군가를 부르고 무언가를 찾았다. 커튼 밖에서는 공연을 소개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암전.
무대가 진동하고 관객의 시선에 붉어진 커튼이 걷히면 열기와 서늘함이 동시에 목덜미를 스친다.가슴은 강렬하게 두근거려, 심장이 도망치려 하는 것 같다. 들려오는 거친 숨결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온몸을 순식간에 점령하는 떨림은 조명이 켜지는 순간, 설레임이라는 이름으로 고개를 든다. 몸짓은 가면 뒤에서 어느 때보다 자유롭지만, 시곗바늘 같이 약속대로 움직인다. 새 컨버스의 밑창이 매끈한 무대 바닥과 부딪히는 때, 어느새 발걸음은 한 명의 발걸음이 아니게 된다. 여럿이 하나 되는 순간, 힘차게 도약하여 관중을 향해 날아오르는 아름다움으로 탈바꿈한다.
총 3일에 걸쳐 공연을 하는 동안, 매번 다르게 설레었다. 주인공인지, 앙상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해서 만들어진 공연이었다. 유학 메이트와 안무 짝꿍이 되어 신나게 박수를 치고 서로를 한 바퀴씩 돌려주며 웃기도 하고, 처음보는 12학년 선배와 춤 파트너가 되어 연기해 보기도 했다. 무대에 서는 그 짜릿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꿈같은 사흘이 지나고 마지막 커튼콜에 혼신을 다해서 모두에게 박수를 쳤다. 거기 있는 모두가 기립박수 받을 자격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