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을 보고
최근 개봉한 영화 덕에 주목을 받은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이다. 한국인이라면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뮤지컬을 하나만 뽑으라면 나는 <영웅>을 선택할 것 같다.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는 뮤지컬이다. 안구 건조증이 있으신 분들께 특히 추천한다.
영웅은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각색을 더한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인데 가상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1909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단지 동맹을 보여준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궁녀, 설희는 게이샤가 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러시아로 건너간 안중근은 만둣집을 운영하는 친구, 왕웨이, 그의 여동생 닝닝, 그리고 다른 동지들을 만난다. 그러나 일본의 추격으로 왕웨이는 목숨을 잃게 된다. 설희로부터 이토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들과 함께 그를 처단할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이토를 처단한 안중근은 재판에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죽음을 맞는다.
한국의 아픈 역사 이야기인 만큼 극이 주는 울림이 남다르다. 정말 극장의 모두가 울고 있는 것 같았던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라는 넘버가 흘러나올 때였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에게 그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역사를 잘 몰라도 유명한 일화인데,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님은 아들에게 직접 지은 수의와 편지를 보낸다. 사형을 앞둔 자식에게 당당하게 걸어가라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짐작할 수조차 없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안중근 의사와 함께 울고 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면, 공연장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누가 죄인인가'는 유튜브에서 워낙 유명한 넘버이지만 뮤지컬은 현장에서 보는 것이 진리다. 안중근과 동지들의 답답하고 억울한, 한이 맺힌 심정이 고스란히 관객석에 전달된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들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안중근 사형 집행 직전의 넘버 '장부가'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마저 아파했던 그들이 움직인 이유는 두려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을 영영 잃을까 두려워서였다고 깨닫게 되는 넘버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토 히로부미의 부각이다.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목부터 '영웅'으로, 안중근의사를 기리는 작품인데도 이토 히로부미의 분량과 표현이 꽤 자비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토의 캐릭터가 안중근 의사의 여정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의 인간성을, 그것도 솔로 넘버와 대사들까지 곁들여, 보여줘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웅>에서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안중근 의사가 그를 처단하려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 극에서는 하이라이트 넘버 '누가 죄인인가'를 부르는 안중근과 동료들의 한을 가사로 설명할 뿐 직접 보여주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관람 전에는 딱히 기대가 없었다 놀란 부분이 연출이었다. 꽤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부분들이 돋보였다. 무대 배경과 조명을 다채롭게 사용해 의미를 더하며, 어두운 색채와 분위기로 자칫 지칠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했다. 달리는 기차의 몸통을 무대에 올려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의 어둡고 위태로운 조선과, 따뜻하고 안정적인 일본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신기하게도 오케스트라 반주만으로 이루어진 추격전이 있는데, 쫓고 쫓기는 긴박함이 느껴질 뿐 아니라 거리의 배경이 함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몰입을 도왔다. 붉고 푸른색의 조명으로 조국의 독립을 향한 굳은 정신을 멋지게 연출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안중근의 분량이 적은 편이라고 느꼈는데, 사실 안중근 의사가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극 속의 영웅이 그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동료들과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이 없게, 어떤 이유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목숨 바쳐 행한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행방도 알 수 없어 조국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조국으로 모셔 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뮤지컬 '영웅'의 조연들처럼, 역사책에 자세히 쓰여 있는 독립운동가들 뒤에서 그들과 함께 한, 또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바친, 용감한 영웅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 모두를 잊지 않게 <영웅>이 돕고 있다. 뮤지컬 영웅이 고마운 깨달음을 주었다. 눈물 나게 슬픈 작품을 좋아하는 분,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 사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보면 좋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