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부

생각이 길어서 말이 짧아졌습니다 #009

by 자크

- 싫은 인간들이 많아 열렬히 미워했지만 실은 내가 제일 밉다. 나쁜 놈, 죽일 놈, 잔뜩 성난 거울 속 네가 제일 악인이야.


- 엄마의 행복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행복을 짊어지는 일은 실로 고역이다. 갈수록 더해지는 무게에 속절없이 휘청휘청. 너무 뜨겁거나, 무겁거나, 냉장고에 10년은 방치된 채 유통기한도 지난 행복을 나더러 어쩌라는 건가. 고백건대 나는 누구의 의미도 되고 싶지 않다. 네. 제가 그 유명한 불효자입니다.


- 아파서 병원에 가는 걸까, 병원에 가서 아픈 걸까. 대체 내가 왜 병원에 다닐까. 징그럽도록 하얀 벽면을 한참 쳐다보다 갑자기 불린 제 이름에 덜컥 놀란다. 네에-. 오늘도 어김없이 무기력의 출석부에 몸과 마음이 도장을 찍는다.


- 그러니까 산다는 건 역시 별 거 아닌가? 무언가 이루는 것도, 남기는 일도 실은 낯선 여행지 담벼락의 2022.01.25 나 다녀감. 정도에 지나지 않는 위안이나 자기만족였던 걸까? 기왕 온 김에 맘 편히 살다 가면 그뿐인 건가?


- 여름이 너무 길어 가을이 반가워졌다. 변덕스럽게도 한풀 꺾인 우울함을 느끼며 문득 정말이지 사심 없이, 최악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늙었구나. 늙는구나. 그래도 가을은 덥지 않아. 허튼 위로는 덤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버스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