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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상일기

불안장애

병상일기 #014

by 자크


아홉 살 되던 해에 아빠가 떠나고 내게 남은 삶은, 마치 그와 즐겨하던 슈퍼 마리오의 마지막 라이프처럼 느껴졌다. 저 두더지 같은 놈들과 새대가리들을 피해 쿠파 성에 도착해야 한다. 이번엔 혼자서. 발을 헛디디는 순간 이제 게임은 끝이다.



이제 우리 집은 너 뿐이다.

너만이 우리의 희망이야.


알았어, 알겠다고.

하지만 낯설고 외로운 밤들을 숱하게 삼키며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니었다.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함정에 빠져도 괜찮아. 이미 여기까지 와 봤으니 실수해도 다시 올 수 있어. 일도 아니지! 게임일 뿐이야. 아무도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괜찮아 만을 여태 갈구하는 늙은이가 되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하면 다 괜찮아. 주문인 듯 뇌까려 보아도 삶은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돌아가기엔 적당히 먼, 하지만 쿠파 성까지는 까마득히 남은 어떤 캄캄한 스테이지에서 나는 멈춰 버렸다. 이동하는 장애물과 펄펄 끓는 용암 사이로 보이는 미지의 악당들. 가야 하는데, 가야 하는 건 아는데-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어 패드를 꽉 쥔 손에는 땀이 삐질삐질. 초점 잃은 눈엔 눈물만 그렁그렁.


등을 떠미는 조급한 BGM이 속절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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