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리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경험하여 잘 몰랐지만 보리야 말로 고양이의 전형적인 성격을 타고났다고 한다. 낯을 심하게 가려 사람들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제리가 갓난 아기처럼 하루에도 서너 차례 스스로 집사의 품으로 파고 들어와 집사를 황홀하게 만드는 반면 보리는 사람에게 많이 의존하지 않고 상당히 독립적이다. 집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늘씬하고 훤칠한 외모에 매우 까칠한 성격으로 당당하고 담대해 보이지만 사실은 현관 벨소리만 나도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가 외부인이 나갈 때까지 나오지 못할 만큼 사람을 경계하는 겁쟁이 쫄보이기도 하다.
이 같은 보리의 지나치게 까탈한 성격이 사람에 의해 구조된 제리와 달리 사람에 의해 엄마품을 빼앗긴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일면 안쓰러운 마음이 있다.
보리는 긴 앞다리를 이용하여 서랍이나 방문을 열 줄 알았으며 심지어 사람 흉내를 내며 휴대폰이나 태블릿 PC를 터치하려 시도할 정도로 영리했다. 한 번은 나의 휴대폰에서 증권거래 앱을 터치하여 마치 무어라도 아는 것처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혼비백산한 적도 있다.
보리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은 고양이는 앞다리, 사람으로 치면 손을 매우 잘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강아지들은 무엇이든 입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고양이는 싸움을 하거나 날 벌레 등을 잡을 때도 마치 권투선수가 팔을 휘두르듯 했다.
혼자 고양이 타워에서 실컷 낮잠을 자다가 심심하면 온 집안을 탐색하고 다니며 제리로 인해 더욱 길게만 느껴지는 앞다리를 이용,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뜯어 내고, 긁어 대고, 작은 틈이나 구석에 있는 온갖 물건을 끄집어 내려 애를 썼다. 한 마디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말썽꾼, 무법자로 등극한 것이다.
성격 또한 집요하기 그지없었다. 본인이 한 번 하고자 했던 것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벽과 바닥이 만나는 틈새에 발라 놓은 실리콘을 몽땅 긁어냈다. 이사 올 때 목돈 들여 새로 들여놓은 소파와 나의 책상 의자를 박박 긁어 스크래치를 해 놓는 것은 기본이고 냉장고 등 집안의 온갖 가구, 가전 밑바닥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먼지 하나라도 끄집어 내려 집중 공략했다.
야단을 쳐도 그때뿐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고수했다. 때문에 우리 집의 벽과 바닥이 만나는 틈새에는 모두 빈 상자나 테이프 등을 이용, 빼곡히 막아 놓아야 했고 소파나 의자 팔걸이에는 별도의 헝겊을 덮어 보호해야만 했다.
체구가 점점 커질수록 더욱더 높은 곳을 지향했다.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났을 때 저 멀리 장롱 위 천정 바로 밑 먼지 구덩이에서 눈만 빼꼼히 드러내고 있던 녀석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아예 싱크대에서 식탁으로, 식탁에서 김치 냉장고로, 곧바로 더 높은 곳으로 튀어 다녔다. 마치 무협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이다.
보리가 우리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저렇게 예쁘고 여리게 생긴 녀석이 조금만 곁을 주면 가족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하곤 했지만 내가 보리 입장이라면 나름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기도 하다.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엄마품을 빼앗겨 이곳에 온 것 만도 억울한데 나 보다 먼저 온 제리라는 녀석이 터줏대감처럼 날마다 못살게 굴지를 않나, 제리 다리가 짧은 것이 내 탓도 아닌데 집사라는 작자는 매사 제리만을 먼저 챙기고 앉았으니 내 기분이 대체 어떻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