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으로 은퇴 후 큰 마음먹고 시작한 기타 레슨을 중단하게 되었던 나는 마음이 울적하고 모든 것이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당시 매우 가깝게 지내던 한 친구와 갑작스럽게 오해가 생겨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그때 딸과 막내아들이 내게 고양이를 키우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막내로 자라 동생이 없어서인지 동물을 무척 사랑했지만 어린 시절 한 밤중 동네 어귀에서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싫었고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는 등의 속담이 있듯 고양이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단 칼에 절대 안 된다고 거절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 딸아이는 어느 화창한 주말 예쁜 검정 얼룩 고양이 한 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무엇 하나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푹 빠져버리는 나의 성품은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퇴근길에 작은 상자를 들고 오셨는데 그 안에 예쁜 아기 강아지가 들어있었다. 제니라 이름 짓고 3년간 들로 산으로 함께 뛰어다녔고 여름방학 때는 제니를 모델로 미술 숙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행 후 집으로 돌아올 때면 동네 어귀에 들어서기만 해도 반가워 껑충껑충 뛰어오르던 제니가 어느 날 밤 독약을 먹고 다시 오지 못할 길을 가버렸다. 몇 년간을 슬퍼했고 아직까지도 제니가 떠난 12월 2일이 되면 제니와의 추억을 떠올릴 정도로 동물을 사랑했기에 그런 헤어짐의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나였다.
그러나 난생처음 만난 고양이를 보고 나는 한눈에 반해 버렸다. 놀랍도록 섬세한 몸놀림, 어여쁜 자태, 선이 뚜렷한 눈, 코, 입 등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녀석의 귀엽고 천진한 행동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의 강아지 ‘제니’의 이름을 따라 ‘제리’라 이름 지은 아기 고양이는 새벽이면 나를 깨우러 코 앞까지 올라와 맘마를 달라고 애교를 부리곤 했다. 정작 고양이를 키우자던 아이들을 제치고 내가 스스로 고양이의 엄마(집사)가 되어 앞장서 놀아주고 챙겨주며 녀석을 사랑하게 되었다. 우울증과 무기력은 멀리 떠나가고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아기 고양이로 인해 우리 집에는 즐거움과 웃음꽃이 만발했다.
제리가 입양된 지 두 달이 지날 때쯤 중성화 수술을 받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저렇게 귀여운 녀석의 2세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중성화시킨다는 것이 왠지 아쉽고 미안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의논하여 암컷 고양이 한 마리를 더 입양하여 딱 한 번 2세를 갖게 해 보기로 결정하고 지인을 통해 어여쁜 노랑 얼룩 고양이 보리를 입양하게 되었다.
보리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입양되었기에 제리 아기 때 보다 훨씬 작았다. 목소리도 제리에 비해 매우 여리고 가냘파 우리는 “에고~!! 천상 여자네 여자~!!” 라며 감탄했다. 그러나 성질만은 사나웠다. 첫 만남이 있던 날부터 우리에게 하악질 (고양이가 경고의 의미로 입을 벌린 채 위협하며 내는 소리)을 해댔고 자신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성격도 악착같아 작은 체구임에도 높은 곳 어디든지 기를 쓰며 기어 올라가려 했다.
보리를 입양하고 한 달 정도 지나 건강검진을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 원장 선생님은 의아한 듯 안경 너머로 보리와 차트를 몇 차례 번갈아 들여다보시며 고개를 연신 가로저으셨다. “어디가 좋지 않은가 봐요?” 딸과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여쭈어 보았다.
“보리…. 여자가 아니라 남자네요. 수컷~!!”
“예에~~??”
이럴 수가…!! 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되었기에 생식기가 제대로 성숙하지 않아 보리를 인계한 지인도 미처 알지 못하고 암컷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결국 제리와 보리는 2세를 포기하고 입양 순서대로 차례차례 중성화를 위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우리 집에 활력을 솟게 하고 즐거움을 주고 있는 제리, 보리. 우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이렇게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두 녀석의 노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거의 매일 작은 스케치북에 녀석들을 번갈아 가며 드로잉 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이 두 녀석들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 우리의 아기 고양이 제리, 보리가 어떻게 나, 이 엄마에게 은혜를 갚게 되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하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은혜 갚은 고양이 이야기와 함께 펼쳐지는 길고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음악과 미술에 관련된 나의 인생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