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학교의 여름 방학은 3개월 정도로 길다. 나는 되도록 학교에 가지 않는 3개월 동안 방세를 아끼려 한국에 들어오곤 한다. 지금 생각하면 영국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개절은 여름인데 그 시기를 노친게 좀 아깝긴 하다. 여름을 제외하면 영국의 날씨는 정말 우중충하다. 특히 겨울에는 해가 4시부터 지기 때문에 학교 갔다 오면 거의 집에 있곤 한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면 우울함을 더 증폭시킨다. 왜 영국의 예술이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우중추한 날씨는 예술가들의 감성을 증폭시키는 매게체가 되기 충분했을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마다. 친구들은 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물어보곤 한다. 영어에다가 발음하기 쉽지 않아 여러 번 말해줘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음 술자리에서도 또다시 물어본다. 나는 결국 포기하고 모른다고 말한다. 그냥 친구들은 내가 영국에서 공부한다는 것과 심지어 패션을 공부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또한 내가 영어를 사용하며 학교를 다니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술 먹는 도중 면전에 대고 다짜고짜 영어를 해보라고 했다. 불쾌했지만 그냥 넘겨 버렸다. 그 친구는 과일 도매 관련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과일을 팔아보라고 시킬걸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봤다.
어쩌다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 있었다. 친척들도 나를 신기해 하긴 마찬가지였다. 미국인과 결혼한 이모가 한국에 올 때면, 돈을 아주 많이 번 이모가 36 빌딩 뷔페를 대절해 온 가족이 모이는 행사를 열곤 한다. 그곳에서 도 영국에서 공부하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삼촌이 있는가 하면, 개나 소나 유학 간다고 떠드는 이모도 있다.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 내가 하는 공부를 무시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학창 시절 공부도를 곧잘 하지 않았던 내가 영국의 좋은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많이 의아 해했던 것 같다.
사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내가 다니는 학교를 잘 모른다. 전 세계 최상위 랭크된 패션 학교이자 예술학교 이지만 분명히 상업적으로 영국의 교육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광고된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 학교를 졸업한 초기디자이너들이 유서 깊은 패션하우스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음과, 일부 디자이너들이 전설적으로 남긴 작품들은 전 세계 패션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입학하고 싶은 이유가 되기 분명하다.
영국의 패션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다. 세계 3대 패션 스쿨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파슨스는 상업적 패션을 추구한다. 알렉산더 왕, 톰포트, 랄프로렌 등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2개의 패션 스쿨은 유럽에 위치해 있다. 벨기에에 위치한 엔트워프와 내가 공부하는 영국에 있는 센 트럴 세인트 마틴즈의 스타일은 창의 적이고 도전적 이다. 알렉산더맥퀸, 크레이그 그린,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상업적이지 않아 보이더라도 디자인의 의도를 설명할 수 있으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는 이 세상에 유일한 브랜드로 거듭날 것이다.
나는 결국 나를 무시하는 사란들을 뒤로하고 전 세계 3대 패션스쿨 중 하나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내가 알렉산더 맥퀸의 마지막 패션쇼를 보고 그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5년 후 그와 같은 학교 같은 코스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