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2017년 영국에서 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남성복 학사를 졸업했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엄마가 영국으로 왔다. 나는 엄마가 영국으로 오기 전 어느 나라를 가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영국으로 온 김에 주변 다른 나라도 같이 관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른 곳은 모르겠고 파리의 에펠탑을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오기 전 가장 가고 싶다고 했던 프랑스의 파리와 남부 지방인 니스를 예약하였다. 그리고 엄마와 같이 갈 영국의 여러 관광지도 알아보았다.
엄마가 영국으로 오던 날 히드로 공항으로 엄마를 마중을 나갔다. 엄마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미그레이션이 걱정되어 오시기 전 영어로 방문 목적과 체류기간 그리고 지낼 곳의 주소를 적어 보내 주었다. 다행히 이미그레이션을 잘 통과한 엄마가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곤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른 나라에서 엄마를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올드스트리트에 위치한 사설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올드스트리트 역을 나서면 뾰족한 직사각형의 건물이 있는데 엄마는 그 건물을 보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첫날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엄마가 피곤할 거라고 생각해서 기숙사 앞에 있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오래된 펍의 외관과 생맥주는 엄마를 기쁘게 했다.
다음날 내가 졸업 후 석사 과정을 공부하게 될 Central Saint Martins를 방문했다. 이 학교는 전 세계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로 내가 패션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목표를 둔 학교였다. 앞으로 공부하게 될 학교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Central Saint Martins의 MA Fashion 과정은 알렉산더 맥퀸이 졸업한 학교의 패션학과이다. 패션쇼를 보고 나도 저 사람과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마침내 그와 같은 학교 학과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엄마는 학교이름을 못 외워 몇 번이고 되물어 보셨다. 그때마다 나는 짜증 내며 다시 가르쳐 주곤 했다. 학교를 방문했을 때에도 어김없이 엄마는 학교 이름을 다시 물어보았다. 나는 짜증 내지 않고 엄마에게 다시 알려 주었다. 그리고 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entral Saint Martins와 London college of Fashion는 UAL(Unoversity Arts of London)이라는 예술대학 연합에 속해있다. UAL에는 5개의 대학이 속해있는데 Central Saint Martins와 London college of Fashion도 이 5개 대학에 속해있다. UAL 소속의 학생들은 UAL에 속해있는 대학의 시설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래서 나도 London college of Fashion에 다닐 때 Central Saint Martin의 도서관을 많이 이용했다.
평소에도 많이 방문했던 곳이지만 엄마와 방문하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영국에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방문한 건 처음이라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학교 다니면서 밥을 먹었던 canteen 그리고 내가 공부하게 될 MA Fashion의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다. 스튜디오는 아쉽게도 밖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엄마는 샐러드 가격과 수제 햄버거 가격을 보곤 깜짝 놀라했다. 엄마가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영국의 물가를 처음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곤 점점 적응했다.
엄마에게 석사과정 동안 내가 지내게 될 새로운 집도 보여주고 싶었다. 석사과정의 합격으로 예상치 않았던 많은 지출이 생기게 되었다. 때문에 석사 공부를 하는 동안 다소 비싼 가격의 사설 기숙사에서 나와 일반적인 학생들이 거주하는 형태인 쉐어 하우스에서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엄마가 오기 전 꾸준히 집을 보러 다니다가 마침 엄마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Camden town에 위치한 한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영국에 오래 거주한 주인아저씨 한 명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 사설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한동안 쉐어 하우스에서 지냈지만 여전히 모르는 남과 함께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은 내가 지내던 기숙사보다 최신식의 건물은 아니었지만 위치가 엄청 좋았다. Camden town역 바로 뒤에 있어서 튜브(지하철)를 타기도 편하고, 학교도 카날을 따라 걸어가면 15~20분이면 도착해서 교통비도 아낄 수 있었다. 게다가 캠든마켓에서 10분 거리이기 때문에 주말 캠든마켓의 액세서리 상점으로 아르바이트를 가기가 쉬웠다. 이 집에서 살게 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와 함께 방문한 계약한 집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엄마는 이 집을 그렇게 나쁘지 느끼셨던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아들이 지낼 곳을 보고는 안심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평소 내가 자주 다니던 런던의 명소로 초대했다. 내가 일했던 캠든마캣, 빈티지 매장이 많은 브릭레인, 런던 센터에 위치한 리버티 백화점, 카나비 스트릿, 버로우 마켓 등. 그리고 내가 평소 가보지 못했던 샤드에서의 런던의 풍경도 감상하고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도 보러 갔다. 엄마는 처음 보는 영국의 풍경을 좋아했다. 그리고 빨간 이층 버스도 신기해했다.
하루는 엄마가 조식으로 기숙사 옆의 작은 슈퍼에서 오이와 양파, 계란을 사서 간단한 오이무침과 계란국을 해주셨다. 그동안 혼자 지내면서 말도 안 되는 요리를 해 먹기도 하고 대부분 사 먹다가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재료로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엄마에게 오이무침을 배워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한동안 해 먹곤 했다.
LCF의 졸업식날 엄마와 함께 졸업식 장소를 방문하였다. 몇몇의 반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서 엄마를 소개 시켜 줬다. 그리곤 엄마에게 학사모도 씌어 드렸다. 졸업식을 무사히 마치고 엄마가 오기 전 계획해 노았던 프랑스로 여행을 갈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