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송 Oct 27. 2024

자주 혼자였던 사람

아빠는 늘 가족 주변을 맴맴 도는 팽이 같았다. 마음은 애틋해도 표현할 줄 모르는 초등학생처럼 괜히 말을 툭툭 뱉었다. 우리의 대화는 한없이 부족했다. 서로에게 꼭 해야 할 말조차 엄마를 통해 전해졌으니까. 엄마는 다리가 되어 아빠의 말을 삼 남매에게 전하고 우리의 말을 아빠에게 전했다. 그럴수록 아빠는 점점 고립되었다.               


가부장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 타인에겐 인자하지만 가족에겐 엄격한 사람. 그리고 자주 혼자였던 사람. 강해 보였던 그의 뒷모습에 외로움이 서려있는 걸 목격하곤 이내 서글퍼졌다.            

    

대학시절, 학생상담 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스무 살, 지금보다 아빠가 더 어려웠던 때 상담 센터에 털어놓은 고민은 아빠와 대화를 하면 눈물이 먼저 터진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빠를 좋아하는데 아빠에게 말 건네기가 너무 두렵다고. 엄마를 통해서만 해오던 소통의 폐해였다.  

             

고질적이던 고민은 결혼을 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었다. 넉살 좋은 미소는 그나마 나았지만 남동생 현진이와 아빠는 여러 가지 문제로 서먹해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우린 얼기설기 엮인 마음을 가린 채 제주로 떠났다.               


여름의 중심이었던 8월의 제주, 집과는 다른 낯선 장소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바라보게 했다. 각자의 방이 아닌 펜션 거실에 모여, 좁은 차 안에 붙어 앉아, 바다에 함께 누워, 우린 서서히 연결되고 있었다. 아빠와 자주 눈을 마주치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어가며 서로의 간극을 좁혔다. 3박 4일간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찍힌 사진 속 아빠는 대부분 무표정이었지만 슬쩍 올라간 입꼬리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빠는 달라졌다. 평생 마트 한번 안 가던 아빠였다. 어느 날 엄마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하고 찡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뚝딱거리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먼저 말을 걸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그가 노력하고 있음을 가족 모두가 느꼈다. 떠나기 전 제일 심드렁해놓곤 은근슬쩍 여행을 또 가고 싶어 하는가 하면 인화한 제주 여행 사진으로 집안 곳곳을 장식하기도 했다.               


아빠는 사실 우리랑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맴맴 돌던 아빠가 이제야 우리 곁으로 쏙 들어온 것만 같다. 지금껏 그가 내뿜던 건기는 사무친 외로움 아니었을까.                


나는 이제 울지 않고도 그와 자연스레 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된 숙제가 끝이 났다. 그래도 아빠를 떠올리면 한쪽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만큼은 여전하다. 영영 지속될 사랑과 그리움이리라.       

        

더 이상 그는 혼자가 아니다.


이전 05화 푸른 밤의 사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