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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Oct 27. 2024

엄마의 청춘

고작 열여섯이었다. 시골에서 떠밀리듯 대구로 상경했던 그녀는 일찍이 노동자가 돼야 했다. 방직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혼자 사는 오빠들 밥을 챙기러 쫓아다니다 부산에 왔다. 목욕탕 등밀이로 일할 땐 등 한번 밀고 천 원을 받았다. 짜장면 두 그릇을 먹을 수 있는 돈이었지만 그마저도 주머니로 다 들어가지 못했다. 한때 그녀의 세신을 받으며 자란 나는 그 손길이 너무 강력해 살이 달아오르곤 했다. 야물다 참 야물어, 칭찬했을 손님의 말을 듣고 그녀는 분명 생긋 웃었을 것이다. 그 고생을 듣고 차마 웃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어느 겨울, 감기에 걸려 몹시 아팠던 날이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객지에서 챙겨주는 이 하나 없는 서러움에 앓고 있을 때 셋방 주인이 노란 설탕물을 끓여 건네줬다. 그걸 받아마시곤 고마움에 눈물이 났다고. 40년도 더 지난 서러움과 고마움의 추억이 기억 속에 생생했다.     


경상남도 창녕, 7남매 중 여섯째로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엄마의 생은 녹록지 않았다. 삼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도 안 해본 일 없이 치열하게 살아왔다. 가발 공장, 신발 공장, 호떡 장사, 떡볶이 장사, 토스트 장사, 화장품 판매, 옷수선, 재봉틀 작업.. 나열하기도 힘든 일들을 가난을 견디기 위해, 자식새끼들 입히고 먹히려 신명 나게 해 왔다. 애석하게도 호기롭게 시작한 일의 끝은 언제나 본전도 못 찾고 끝났지만.     


그녀는 거리에 피어난 들꽃 같은 사람이었다. 풍파에 즈려 밟히면서도 끝끝내 살아 핀 꽃처럼 모진 고생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언제나 잠깐 실망하고 다시 활력을 찾았다. 엄마의 기운은 과연 어디서 샘솟는 걸까.     


그런 그녀도 우는 날이 있었다. 아빠와 다툰 어느 날, 엉엉 울던 엄마를 마주했다. 혼자 이불속에 숨죽여 울다 북받친 엄마는 “나도 학교 다니고 싶었어” 하곤 서럽게 우셨다. 학업을 이어가는 게 사치였을 형편. 선택지가 없었던 어린 노동자의 삶, 더 배우지 못한 한이 서려있었다. 함께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른 돈을 많이 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은 됐지만 돈을 많이 버는 어른은 못된 나는 집에 보내는 반찬거리 몇 개로 마음을 대신하곤 한다. 찬거리를 보내놓고 나면 늘 전화가 온다.     


"엄마가 해준 것도 없이 이래 받아가지고 어떡하노.."

"뭐가 해준 게 없어~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 줬잖아..!"     


엄마의 고생을 다 열거해서라도 나는 그녀가 마땅히 하염없이 받아도 되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터질세라 말 몇 마디로 엄마를 토닥이곤 전화를 끊는다.     


엄마의 지치지 않는 활력과 긍정적인 천성은 삼 남매를 온전한 인간으로 길러내기 충분했다. 그녀의 청춘은 자신의 생뿐 아니라 우리 생에도 녹아있다. 진하게 베여 새겨진 엄마의 청춘의 향기가 내게서 폴폴 난다.

    

고단했던 청춘의 일 막이 다 지나가고 이제 이막이 올랐다. 환갑을 넘어선 그녀는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요즘 그녀를 가만 보고 있으면 긴 시간 파도에 깎인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구석이 있다. 수없이 달키고 볶이며 견뎌왔을 그녀의 생이 진정으로 빛날 시간은 지금부터다. 브라보, 엄마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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