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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Aug 08. 2024

막둥이

삼 남매인 우리 집에서 남동생은 막내다. 지금은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내 또래 친구들 중엔 첫째 딸, 둘째 딸, 셋째는 아들인 삼남매 집이 많았다. 아들을 낳기 위한 세 번째 도전이 성공한 것이다. 시대가 그랬듯 엄마도 셋째를 낳기 원했지만 아빠는 반대했다. 딸 둘 키우기에도 버거운 형편이었으므로. 


그럼에도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내게도 남동생 진이 생겼다. 그렇게 반대하던 아빠였지만 멋쩍게도 막둥이는 아빠 껌딱지가 됐다. 아빠는 셋 중 진을 제일 예뻐했다. 낳지 말라 했던 죄책감을 씻기라도 하듯 물고 빨며 어딜 가든 옆에 끼고 다녔다.


주말이면 엄마와 나와 여동생, 아빠와 남동생은 각각 찢어져 목욕탕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끝나고 나면 아빠는 항상 막내만 데리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끔찍한 아들 사랑에 엄마는 아들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고 눈을 흘기며 자주 얘기하곤 했다.


그렇게 각별했던 아빠와 아들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진이 사춘기가 오면서였다. 아빠는 원체 말수가 적고 표현이 없는 분이라 말을 걸지 않으면 먼저 건네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춘기 아들이 살갑게 아빠에게 다가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씩 생긴 틈 사이로 불만도 흘러갔다. 한번은 진로 문제로 크게 부딪혀 그 뒤로 몇 년간 말도 섞지 않게 됐다.


아빠와의 사이가 틀어지며 자연스레 진은 나머지 가족에게도 마음의 문을 닫았다. 마음을 대변하듯 집에 들어오면 방문을 닫곤 나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흘렀다.


진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건 제주도 여행에서였다. 모두에게 그랬듯 막내에게도 가족 여행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집에 오면 방안에만 있던 그가 3박 4일간 가족들과 꼭 붙어 대화하며 어색함도, 서운함도 많이 달아난 것 같았다. 여행 이후 확실히 가족들을 대하는 게 아빠 못지않게 달라졌다. 


지금껏 가족에게 무뚝뚝했지만 남동생은 늘 제 몫을 다하고 살았다. 힘든 형편에 먼저 시집간 누나 대신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도왔다. 한번은 사촌 오빠와 대화하다 고생하는 막내가 안타까워 ‘불쌍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실수였다. 진은 못마땅해하며 내게 정정해 주길 바랐다. 불쌍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고 해야 맞다고. 고맙다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그는 나를 '누나야'라고 부르거나 '큰누나'라고 부른다. 큰누나이자 누나야인 나는 온전한 누나 노릇을 못한 게 못내 마음이 쓰인다. 다섯 살 터울의 그에게 듬직한 큰누나가 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지나간 세월이 한스럽다. '누나야'하고 부르면 뭐든 해주고 싶어진다. 내가 해야 하는 고생을 그가 나눠진 것에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궁금하다. 힘들진 않을지, 어떤 게 힘든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지. 가끔 물어보면 다 괜찮단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을 결코 나눠주는 법이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얘의 마음을 탈탈 털어 들어보고 싶다.


지금도 내 폰에는 진의 이름이 ‘막둥이’로 저장돼있다. 암만 늠름한 척해도 내겐 일평생 막둥이일 진이 자꾸만 어른이 된다. 그가 덜 든든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만 의지하고 조금만 고마워할 수 있게 자신의 생을 더 돌보며 살아갔으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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