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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Aug 09. 2024

존재만으로 충분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모네랑 자주 함께였다. 7남매 중 여섯째였던 엄마는 막내 이모가 가장 가까운 혈육이자 친구였다. 이모는 당뇨를 앓았다. 관리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볼수록 야위어가는 이모를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합병증으로 입원한 이모 병문안을 갔다. “송아, 엄마 말 잘 듣고.. 응?”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한없이 야윈 이모 얼굴을 마주 보기 힘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는 하늘의 별이 됐다. 이모 나이 고작 48세.


엄마는 가장 가까운 혈육이자 아꼈던 친구, 동생을 잃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땐 미처 다 몰랐다. 이모의 죽음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게도 3살 터울의 여동생 미소가 있다. 같은 방을 쓰며 참 많이 투닥였다. 자려고 누우면 서로 이불 끝을 부여잡고 당기며 더 가져가려 심술부리기 일쑤였다. 화장품 뚜껑을 서로 안 닫았다며 우기다 싸운 적도 많았다. 흔한 자매들처럼 옷 때문에 자주 다투고 엄마의 심부름은 늘 제 몫인 양 투정을 부려댔다.


쓸데없이 싸우고 대수롭지 않게 화해하기를 반복하던 사이, 우린 30대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결혼했고 한 가지 재밌는 사실도 발견했다. 나 혼자 쓰는 화장품 뚜껑이 매번 열려있는 걸 보며 범인은 나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기가 안 그랬다며 씩씩대던 미소가 생각나 꽤 미안했고 조금 머쓱했다.


여행에서 동생과 오랜만에 한 방을 썼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감정에 북받쳐 언니로서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며 꺼이꺼이 울었다. 어디도 말 못 할 얘기를 털어놓고 한참을 눈물 흘렸다. 그녀는 어린애 달래듯 내 울음을 그치게 하곤 말했다.


"언니야, 언니는 내 언니니까 난 다 이해할 수 있어. 지금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으니까 그만 미안해해. 응?"


'언니가 내 언니니까..' 몇 번을 곱씹었다. 맞아, 나 역시 그랬다. 네가 내 동생이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살면서 들어오던 말 중 가장 안심되는 말이었다. 잘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장녀 노릇을 못해 낸 게, 언니 누나 노릇을 잘 해내지 못한 게 한편에 짐으로 쌓여있었다. 그런 내게 '언니가 내 언니'라는 이유로 충분하다는 말은 위로 이상이었다.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얼마나 편안한 숨을 쉬게 했는지 모른다.


요즘 우리는 자주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체크하다 때때로 술잔을 부딪히며 위로하곤 한다. 빨리 철이 들어버렸던 내가 다시 철없는 언니가 될 수 있도록 자꾸만 나를 귀여워하는 그녀. 가끔 나보다 언니 같은 그녀가 고맙고 짠하다.


가장 가까운 혈육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내 동생. 그리고 이제야 돌아보는 엄마의 마음. 이모를 잃었을 때 엄마는 어땠을까? 그 마음을 다 알기조차 두려웠다. 수많은 날을 그리워하며 보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더 많이 함께하지 못해서 그립고, 함께 한 날을 추억하느라 그립고. 그리움이 닳고 닳아 해졌을 것이다.


엄마의 슬픔을 뒤늦게 이해하며 그리운 이모를 추억하며 글을 쓴다. 다른 이유 하나 없이 내 동생이니까, 그걸로 충분한 미소에게. 나로 인해 잠시라도 편안한 숨을 몰아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워할 일 없이 오래오래 곁에 있길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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