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꿈을 묻는 질문에 장난스레 '현모양처'라고 적었다. 결과는 대실패다. 살림도 젬병이고 요리도 젬병. 아직 어머니도 되지 못했으며 좋은 아내라고 하기엔 많이 불량하다. 그에 반해 남편 현은 현부양부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자녀는 없지만 낳게 된다면 어떤 아빠가 될지 눈에 그려진다.
처음 만난 21살, 그땐 현도 어렸는데 나를 잔뜩 어린애 다루듯 했다. 같은 과 복학생이었던 현과 대부분 수업을 같이 듣고 과제도 함께 했다. 수업을 빠지려 하는 나를 도닥여 강의실에 앉혀 놓기도 하고 시험 기간엔 도서관에 데려가 공부를 시켰다. 덤벙대다 어디 걸려 넘어지거나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내게 현은 웃음과 한숨을 번갈아 쉬며 물건을 찾아오고, 주의를 주었다.
"다송아, 조심해야지" 현이 가장 자주 하는 말.
핸드폰 보면서 길 걸으면 위험해, 음식 할 때 불조심해야 돼, 혼자 가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가끔 이 정도면 오빠가 아니라 아빠인 것 같다며 우스갯 소릴하면 현은 그저 한번 웃고는 잔소리를 이어간다. 여전히 어린애 마냥 나를 귀여워하며 지키는 그가 있어 사실 좀 더 철없이 늙고싶다. 다정한 현의 잔소리를 닳도록 들으며 자라나고파서.
그는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아 돈도 마음도 가족 외 관계에는 잘 소진하지 않는다. 몹시 가정적인 그는 주말 아침이면 항상 밀린 빨래를 한다. 내가 일어나기 전 빨래와 바닥 청소까지 하곤 혼자 누룽지를 먹으며 소파에 기대 있다. 부스스 잠에 깨 거실로 나가면 "다송이 일어났어~?" 다정히 나를 부른다. 11년째 매주 반복되는 루틴, 그는 생색 한번 낸 적이 없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우리는 신혼집을 원룸에서 시작했다. 양가 도움받을 형편은 못되었고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모은 돈도 적었다. 서두르는 결혼에 가족들의 걱정도 컸지만 작게 시작해 넓혀나가면 되지 싶은 맘이었다.
멋모를 때 번갯불 콩 굽듯이 해버린 결혼이라 대출 제도를 활용할 생각도 못 했다. 원룸에서의 삶을 돌이켜보면 좁은 곳에서 어찌 살았나 싶지만 당시엔 불편한 것 없이 꽁냥 거리며 지냈다.
이후 조금씩 전세금을 늘려가며 2번의 이사를 했다. 원룸에서 방 두 칸이 생기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엉겁결에 넣었던 청약이 당첨되어 올해 입주를 앞두고 있다. 원룸 살던 때를 생각하면 그저 감개무량하다. 그동안 착실히 살아온 남편 덕에 복받나 싶다. 물론 현을 만난 게 가장 큰 복이다.
가끔 현에게 짧은 편지를 쓴다. 얼마 전 내가 준 편지를 모아두지 않아 괜한 심술을 부렸다. "왜 내가 준 편지를 보관하지 않아? 우리의 추억이 다 사라지고 있어!"
현은 나를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라는 거야, 내 추억은 지금 내 옆에 있는데?"
어진 나의 현은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내게 늘 일깨워준다. 그간 온몸에 새긴 추억들은 주름이 되고 희끗 솟아난 흰머리도 되었다. 언제든 원하면 읽어낼 수 있는 서로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두고두고 읽어나갈 우리의 추억이 오늘도 새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