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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Aug 06. 2024

자주 혼자였던 사람

그가 내뿜던 건기는 사무친 외로움 아니었을까

아빠는 늘 가족 주변을 맴맴 도는 팽이 같았다. 마음은 애틋해도 표현할 줄 모르는 초등학생처럼 괜히 말을 툭툭 뱉었다. 우리의 대화는 한없이 부족했다. 서로에게 꼭 해야 할 말조차 엄마를 통해 전해졌으니까. 엄마는 다리가 되어 아빠의 말을 삼남매에게 전하고 우리의 말을 아빠에게 전했다. 그럴수록 아빠는 점점 고립되었다.


가부장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 타인에겐 인자하지만 가족에겐 엄격한 사람. 그리고 자주 혼자였던 사람. 강해 보였던 그의 뒷모습에 외로움이 서려있는 걸 목격하곤 이내 서글퍼졌다. 


대학시절, 학생상담 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스무 살, 지금보다 아빠가 더 어려웠던 때 상담 센터에 털어놓은 고민은 아빠와 대화를 하면 눈물이 먼저 터진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빠를 좋아하는데 아빠에게 말 건네기가 너무 두렵다고. 엄마를 통해서만 해오던 소통의 폐해였다.


고질적이던 고민은 결혼을 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었다. 넉살 좋은 미소는 그나마 나았지만 남동생 현진이와 아빠는 여러 가지 문제로 서먹해진지 오래였다. 그렇게 우린 얼기설기 엮인 마음을 가린 채 제주로 떠났다.


여름의 중심이었던 8월의 제주, 집과는 다른 낯선 장소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바라보게 했다. 각자의 방이 아닌 펜션 거실에 모여, 좁은 차 안에 붙어 앉아, 바다에 함께 누워, 우린 서서히 연결되고 있었다. 아빠와 자주 눈을 마주치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어가며 서로의 간극을 좁혔다. 3박 4일간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찍힌 사진 속 아빠는 대부분 무표정이었지만 슬쩍 올라간 입꼬리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빠는 달라졌다. 평생 마트 한번 안 가던 아빠였다. 어느 날 엄마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하고 찡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뚝딱거리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먼저 말을 걸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그가 노력하고 있음을 가족 모두가 느꼈다. 떠나기 전 제일 심드렁 해놓곤 은근슬쩍 여행을 또 가고 싶어 하는가 하면 인화한 제주 여행 사진으로 집안 곳곳을 장식하기도 했다.


아빠는 사실 우리랑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맴맴 돌던 아빠가 이제야 우리 곁으로 쏙 들어온 것만 같다. 지금껏 그가 내뿜던 건기는 사무친 외로움 아니었을까. 


나는 이제 울지 않고도 그와 자연스레 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된 숙제가 끝이 났다. 그래도 아빠를 떠올리면 한쪽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만큼은 여전하다. 영영 지속될 사랑과 그리움이리라.


더 이상 그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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