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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Aug 11. 2024

가족사진

열세 살의 여름, 가족사진을 찍는 숙제가 있었다. 엄마의 지휘 아래 필름 카메라를 손에 들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족들을 소집해 운동장 어귀에서 찰칵, 첫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다. 삶의 무게가 입꼬리에 달린 듯 엄마 아빠의 표정은 무거웠고 삼 남매는 싱긋 웃었다.


빚 바랜 사진을 추억하며 언젠가 다시 번듯한 사진을 찍겠노라 다짐했지만 바람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 설날, 아빠가 던진 한마디에 미뤄둔 마음이 분주해졌다. "올해는 가족사진도 찍고 여기 걸어두고 하면 좋겠네" 좀처럼 마음을 보이지 않는 아빠의 말에 잠자던 추진력이 깨어났다.


마음에 드는 사진관을 몇 날 며칠 검색해 골랐고 가족들과 스케줄을 맞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꼭 여행을 앞둔 것처럼 신났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 운동장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사진관으로 향했다. 우리가 찾은 사진관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고 작가님의 인상이 참 좋았다. 예쁜 순간을 잘 포착해 주길 기대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은 3가지 콘셉트로 진행됐다. 부모님 촬영, 원 가족 촬영, 사위와 함께 촬영. 첫 순서는 부모님이었다. 하얀 배경의 스튜디오에 두 분이 서있는데 괜스레 울컥했다. 손을 잡고, 볼을 맞대고, 점점 고난도 주문이 이어졌다. 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는 작가님의 말에 아빠는 꽤 오래 뜸을 들이고 버벅거리다 겨우 입을 뗐다. "사.... 사랑해"


뚝딱거리는 아빠 모습에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다. 엄마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봤다. 거의 감격에 겨운 표정에 가까웠다. 아빠에게 고백을 받다니!


온 가족이 함께한 촬영에서 나도 아빠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았던 게 십여 년 전 할머니 장례식장이었던가. 아이같이 엉엉 울던 아빠 손을 잡고 나도 울었는데. 손을 잡자 그때 기억이 스쳤다. 늘어난 주름과 굳은살에 흐른 세월을 실감하며, 앞으로 나는 몇 번이나 더 아빠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서로 바라보며 웃으세요" "아버님, 어머님 볼에 뽀뽀!" "가족분들 더 다정하게, 가까이 붙어볼까요" 작가님의 능청에 우린 까르르 넘어갔다. 몇 년 치 웃음을 다 쓴 것 같다는 아빠, 천진난만한 엄마, 원래도 예쁜데 더 예쁘게 웃던 미소, 어릴 적 개구진 표정이 남아있는 막둥이 진. 흐뭇하게 우릴 바라보는 남편. 그는 내게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가족사진이란 좋은 핑계로 서로를 눈에 가득 담았다. 시간이 지나 기억은 희미해져도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던 이 사진만은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알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낭비하는 날들이 잦다. 미루고 망설이던 일들이 쌓여 결국 후회거리가 될 텐데. 후회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가족사진을 찍고,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엄마와 데이트를, 아빠에게 전화를, 동생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하고픈 일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우리의 모래시계를 자꾸만 거꾸로 뒤집고 싶다. 이 시간이 영영 계속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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