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살금 이씨와 김씨
어린 나의 가방에서 쓰레기들을 끄집어내며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하룻동안 밖에서 내가 사용한 물건들의 잔해를 전부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오는 어린이였고,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꼬박꼬박 가방을 비워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그 어린이는 훗날 자라 쓰레기를 쓰레기가 아닌 척 둔갑시키는 청소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 먹은 걸 왜 그대로 포장해 둬?"
여전히 엄마는 그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꼬박꼬박 새 것처럼 둔갑된 많은 것들을 쓰레기로 분류해 내다 버려주었다. 그리고 그 청소년은 자라서......
"엄마 왜 몰래 출근해?"
살금살금 출근하는 엄마에게 전화로 출근 인사를 건네고,
"할머니 뭐가 궁금해?"
살금살금 구경을 오는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어른이 된다.
살금살금 뭐든지 티나지 않게 해두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었던 나의 버릇이 사실 알고 보니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전해져오고 있던 것이다.
이른 아침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눈을 떴는데 방밖으로 누군가 조심조심 짐을 찾아 들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에게 조용한 소리로 다녀올게, 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조용한 아침은 고스란히 내 귓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잘 다녀와
엄마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보내자 엄마에게 곧장 답장이 왔다.
-ㅋㅋㅋㅋ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엄마는 그만 지난 밤 내 방에서 통화를 하다가 화장품을 두고 나온 걸 떠올렸다. 방문을 열지 말지 고민하던 엄마는 삐걱이는 문고리를 잡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로션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부랴부랴 장비를 착용하고 헬맷을 쓰고 막 오토바이에 타려는 참에 울린 휴대전를 보고 맥이 탁 풀리더라고 엄마는 깔깔 웃었다.
"얼마나 안 깨우려고 조심을 했는데."
"미안. 진작 깨있었어."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내가 방문을 열어놓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할머니가 슬쩍 내 방을 들여다보고 선 게 느껴졌다. 비몽사몽한 정신이라 나갈 생각은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 할머니가 조용히 내 방문을 닫더니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어 몸을 확 일으켰다. 현관문을 열고 나간 마당에는 할머니가 막 지팡이를 짚은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할머니!"
"자는 줄 알았더니."
할머니는 조금 놀란 얼굴로 픽, 김이 셌다는 듯이 웃으며 내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다 큰 성인이 일은 안 하고 방구석에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불면증 끝에 찾아온 저 짧은 잠이 혹여나 달아날까 싶어 최대한 조심하는 살금거리는 소리들은 내내 나를 웃음 짓게도 눈물 짓게도 만든다. 집안일이라도 하라는 듯 은근슬쩍 눈치를 주는 순간에도 나는 할머니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기 위한 할머니의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이미 몸으로 익혀 알고 있으니까.
엄마와 할머니의 보호로 나는 불면증 끝에 찾아오는 짧은 잠을 감히 단잠이라고 부르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울적해지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방문 밖으로 들리는 살금거리는 발소리를 떠올리면 쪼그라든 마음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진다. 부푼 마음은 나를 조금 더 살아가게 만든다. 살아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운 발소리들을 나는 오늘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