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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Oct 12. 2022

삐약이는 강아지를 아시나요?

매매해!

아침나절이 지나 슬그머니 작은방 문이 열리고 도도도도, 재빠르게 바깥으로 뛰어나오는 발소리들이 울린다. 그들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나는 턱끝까지 덮어쓴 이불을 이마 끝까지 잡아당기고 힘을 준다. 내 주변을 재빠르게 훑어보던 그들은 순식간에 나의 머리 쪽으로 올라와 자그마한 발과 주둥이로 내 머리를 쪼아대기 시작한다.


"삐약! 삐약!"


그럼 나는 몸을 조금 더 웅크리다가 결국 이렇게 외치고 마는 것이다.


"아, 열무야아아아!"


열무는 언니가 키우는 강아지인데 특이하게도 멍멍, 왈왈, 이 아니라 삑- 삐익- 하는 소리로 짖는다. 끼익-끼앙- 하는 소리로도 들리는데 어쨌든 일반적인 개의 짖음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


"얘는 왜 이렇게 삐약 대?"

"몰라. 원래 그랬어."


성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정말 짖는 법이 다른 개들과는 좀 다를 뿐이다. 심지어 귀가 뜯겨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렁찬 삐약임이라 한 번 짖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왕 크면 왕 귀엽다는 말처럼 대왕 병아리가 있다면 왕 귀엽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은 그저 외관에 지나지 않았음을, 왕 크다는 건 소리마저 왕 커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열무를 통해 깨달아 가고 있다.


나하고 엄마야 워낙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미 열무 특유의 사랑스러움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평생을 산골에서 육식과 거래를 위한 용도가 아닌 동물은 키워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개는 밖에서 키워야지."


언니가 개를 데리고 시골에 놀러 온다는 말을 전했을 때도 제일 먼저 한 말이 개를 집에 들이냐는 것이었다.


"뭔 개를 데리고 다녀."


이런 말도 덧붙이면서 시큰둥하니 언니의 방문을 금세 잊으셨다. 오후 나절이 되어 언니와 형부가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막 집에 방문했다. 할머니는 누군지 잘 모르지만 일단 손님이니 반갑다, 는 특유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언니와 형부를 맞이했는데 개 두 마리를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여! 개를 데리고 왔어?"

"응, 할머니. 개도 왔지!"


언니가 우렁차게 대꾸했다. 할머니는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개 두 마리가 집을 헤집고 다니는 걸 지켜보더니 이윽고 소파에 가 앉아 중얼거렸다.


"뭔 개를 데려왔어."


그러니까 할머니는 개가 집을 지키지 않고 보호자를 따라 이동을 함께 한다는 것과 자신의 집 안을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상황 두 개가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는 애써 밝은 얼굴로 배추와 열무를 부르며 할머니에게 이 개들의 친화력을, 사랑스러움을 어필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얼마 못 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배추가 할머니에게 다가가자 할머니가 바닥을 한 번 쿵 울렸고, 그걸 시작으로 배추가 할머니를 보면 짖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적인 짖음 보다는 놀자는 의사표현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든 짖음은 짖음이었으니 할머니는 깜짝 놀라 발을 한 번 더 쿵 울렸고, 그것은 또 다른 짖음을 불러오며......


그 후로도 배추는 심심하면 할머니를 쫓아가 멍! 하고 괜히 짖기 시작했다. 배추 바라기인 열무도 따라 삐약! 하고 짖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괜히 보이지 않는 회초리를 찾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매매해!"

"멍멍!"

"매매!"

"멍멍!"


분명 두 개와 사람이 떠드는 소리만 들어보자면 싸움이 붙을 것만 같은데 개들은 꼬리를 흔들고 있고 할머니의 입에는 놀랍게도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가 히죽, 웃으며 다시 매매! 매매! 하며 개들을 향해 손짓 발짓을 했다. 개들도 지지 않고 짖으며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일반인의 귀로는 이해할 수 없는 'ㅁ'으로 전달되는 '마음'의 대화가 분명 할머니와 개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언니가 머무는 며칠간 '매매'와 '멍멍'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엄마와 나는 할머니 몰래 눈빛을 교환하며 웃으면서 한 편으로는 할머니와 개들 사이의 우정이 아슬아슬한 밧줄을 타고 있다는 느낌에 불안해하곤 했다.






"뭔 개를 데리고 다닌다고 그래."


언니가 개들과 함께 떠나고 고요해진 집 안을 둘러보며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어딘지 후련해진 얼굴이었다. 소파에 앉아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으며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였지만 어딘지 창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우정에 대해 떠올릴 때면 종종 할머니와 개들에 대해 생각한다. 서로를 결코 사랑하지 않으면서 간질간질하게 밧줄을 타는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모습이 우정의 한 언저리를 매만지고 있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 자체로 존재하며 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반향이 그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삐약이는 강아지와 멍멍 짖는 개와 매매하는 할머니 사이의 놀라운 우정이 처음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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