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제 Aug 29. 2022

미션 임파서블

그녀의 미션

당신은 방에 누워 있다. 이제 막 오전 6시를 넘긴 이른 시간에 방 밖에서 누군가의 속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그들의 대화가 신경 쓰이지만, 지난밤에 누적된 피로를 떼어낼 수 없어 다시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당신은 여전히 방에 누워 있다. 잠에 깊이 빠져있고,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어 꿈에서마저 깨고 싶지 않다. 바로 그때.


덜컥.


당신은 눈을 번쩍 뜬다. 짧은 시간의 단잠 때문이었는지, 기분 좋은 단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방문객의 기척 때문인지 피로는 이미 달아나 버렸다.


덜컥.


당신이 눈을 깜빡이며 뿌연 시야로 천장을 응시하는 사이 방의 문고리는 다시 한번 반쯤 돌아가고, 방문은 당장이라도 열릴 듯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당신은 침을 삼키고 몸을 일으킨다. 문고리를 응시한다. 문고리가 다시 한번 돌아간다.


덜컥.


문은 결국 열리지 않는다. 열리는 건


"할머니!"


푹 잠긴 내 목소리뿐이다.


서스펜스 드라마 저리 가라 할 만큼의 상황이지만 거의 매일 아침 내가 겪 일이다. 이른 아침에 엄마가 출근을 하고 나면 할머니는 혼자 시간을 보내다 꼭 오전 10시가 가까워질 즈음 내 방문의 문고리를 덜컹거렸다.


"저 방엔 누가 있나?"


할머니는 아침상 앞에서 엄마에게 매일같이 이렇게 물었다. 어제도 그제도 그 전날에도 밤이면 "할머니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네던 나는 이미 할머니의 머릿속에 지워진 뒤였다.


"엄마. 저 방에 제 있어. 제. 알지? 내 딸. 그런데 밤에 하는 일이 많아서 늦게 일어나니까 깨우면 안 돼."


엄마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할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출근을 하곤 했는데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머니는 내 방문의 문고리를 돌리는 것으로 나의 잠을 깨웠다. (사실 밤에 하는 일이라곤 얼렁뚱땅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으므로 할머니가 오전에 깨워주는 게 생체리듬에 더 좋은 일이긴 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엄마의 출근을 배웅하고 더 이상 궁금하고 심심해서 참을 수 없어지는 시간이 오전 10시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문을 열기 위해 절실히 달칵이던 것과는 별개로 할머니는 막상 내가 나오면 낯을 가느라 늘 먼 사람이었다.


방 밖으로 나온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떡이나 부침개 따위를 집어 먹으며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나는 알면서 일부러 물었다.


"할머니, 밥 먹었어?"

"응. 먹었지. 거 너 먹어라."

"할머니 안 심심해?"

"뭐이 심심해."


러면 할머니는 설렁설렁 내 근처로 다가와 창밖을 한 번 내다보고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자 부엌 식탁에 앉아 창밖을 보며 식은 떡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나는 우울증 약을 챙겨 먹은 뒤 내 방으로 들어가 또다시 잠을 잤다.


오후 나절이 되어 발 밑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예민한 눈이 순식간에 번뜩 떠지며 고개를 돌렸다. 방문 앞에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내 자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할머니 왜?"


나는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허허, 웃으며 별 말이 없다가 몸을 돌리며 한 마디 툭 던졌다.


"누가 있나 하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할머니가 천천히 거실을 가로질러 소파로 가 앉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문께에 서서 흐트러진 머리를 묶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동그란 얼굴이 나를 향해 있었다. 동그란 웃음이, 동그란 호기심이 담긴 얼굴이.


그 순간 내 몸속으로 무언가 떠밀려 들어왔다. 모든 새로움에 거짓 없는 호기심을 품는 할머니의 눈동자가 내 마음을 움켜쥐었다. 나의 얼굴, 나의 몸, 나의 행동과 나의 기억, 나의 마음, 나의 숨까지도 궁금해하는 한 사람을 마주 보고 서서 나는 어딘가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할머니의 곁에 가 앉았다.




함께 한 지 삼주가 지나갈 즈음 할머니는 나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묻지 않고도, 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아니 방문 너머에 '누구'가 아닌 '내'가 있음을 알고 힘주어 방문을 돌릴 만큼.


어느 순간 할머니의 질문은 "누가 있나?"에서 "일어났으면 나오지 뭐 하니?"로 바뀌기 시작했고, 내가 밥을 먹으면 방에 들어가 숨는 대신 내가 밥을 먹는 동안 마주 앉아 함께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를 향해 아무 이야기나 떠들었다.


나는 하늘에 대해, 공기에 대해, 새에 대해, 밭과 풀과 나무에 대해 실없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았다. 할머니는 모든 말에 적당히 가끔은 우스운 대꾸를 해주며 내 말을 들어주었다.


이 모든 대화는 잊힐 것이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결의 위로를 받았다.


그 후로 할머니는 매일 오전마다 내 방문을 열었다. 이제는 실패하지 않고, 금방 열어젖히는 할머니의 실력에 웃음이 난다. 당연히 할머니는 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방문과 당연히 마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침의 부엌 식탁은 시골을 떠나 서울에 혼자 있을 때도 늘 내 마음에 끈처럼 묶여 있다.


매일 아침 불가능해 보였던 미션을 가능하게 만들어버린 할머니의 호기심처럼 나의 생의 끈도 끊기고 늘어질지언정 천천히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전 03화 제발 좀 쉬라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