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시골에 올라간 이유가 할머니의 치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한 건 시골에 올라간 직후부터 엄마를 집안에서 볼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한 다음부터다. 그러니까 엄마는, 풀을 뽑으러 시골에 올라갔다.
여기까지 썼는데 엄마가 듣더니 깔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엄마를 웃기는 데 성공했으니 이 뒤부터는 내 마음대로 불만을 털어놓아야겠다. 엄마, 제발 좀 쉬세요! 좀!
엄마는 어릴 적부터 매우 바쁘게 살았다. 10대 시절부터 공장에 다니며 삼촌의 공부를 도왔고, 공장에서 만난 아버지와 결혼해 경제능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눈곱에 미안할 정도로) 아버지의 수발을 들었으며, 딸 둘을 낳아 키웠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댁의 제사를 주관하고, 경조사를 챙기고, 가족들의 병시중도 모두 혼자 들었으며 등등 나열하기도 벅찬 데다 더 쓰다가는 내가 화가 나니 여기까지만 쓰도록 하겠다.
정말이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가 제대로 쉬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서울의 일을 정리하고 시골에 간다고 했을 때 거기선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엄마 나이도 이제 예순이 코앞이었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이는 엄마의 온몸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에 가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봐드리는 김에 엄마의 건강도 회복되어 제대로 된 휴식을 즐기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몇 년간은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우울증이 중증이 되며 요양차 내려간 시골에서 내 눈으로 확인한 건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도대체가 엄마의 얼굴을 마주 볼 시간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엄마악!!"
내가 창가에 올라서서 어디 있는지 모를 엄마를 향해 고함을 지르면 저 멀리서 자그마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어어!"
그럼 나는 아, 오늘은 저 쪽에서 풀을 뽑고 있구나, 하고 엄마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당과 밭을 정리하고 할머니의 아침 식사와 약을 챙겨드린 후 오전 8시가 되기 전에 공장으로 출근한다. 오후 5시에 퇴근하여 집에 오면 다시 밭일을 하거나 산에서 풀을 뽑으며 해가 져서야 들어와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기다리다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 엄마의 일과였다.
"엄만 도대체 언제 쉬어?"
"그러게. 진짜 언제 쉬지?"
"그니까 왜 그렇게 돌아다녀! 집에 좀 붙어 있어!"
"할 게 많아!"
매일 밤이면 피곤해 쓰러져 있는 엄마의 옆에 달라붙어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그러면 엄마는 피곤함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요상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소파에 앉아 바닥에 널브러진 엄마와 그 옆에 붙어 앉은 나를 구경하던 할머니가 넌지시 한 마디 던진다.
"그래 피곤하니?"
허허 웃는 소리를 시작으로 할머니도 우리의 대화에, 아니 전쟁에 끼어든다. 나는 엄마가 너무 집에 안 들어온다고 할머니에게 이르고, 엄마는 내가 일을 안 도와줘서 그런다고 할머니에게 이른다. 할머니는 네 말이 맞다, 네 말도 맞는구나, 하는 어느 인물이 떠오르는 미소를 짓고 허허 웃으며 우리의 얘기를 다 들어준다.
그렇게 셋이 투닥이다 보면 8시가 넘고 그러면 할머니와 엄마는 거의 동시에 잠에 든다. 갑작스러운 휴전 선언으로 거실에 혼자 남게 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엄마를 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동시에 이 상황이 전부 우습고도 눈물겹다는 생각을 조금 하다가 10시쯤 되어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엄마악!"하고 엄마를 고함쳐 찾고, 아침을 먹으며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로 다시 한번 엄마에게 좀 쉬라며 쫑알대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참 질리지도 않는 아침이다.
결국 엄마를 설득하기를 포기하지도 그렇다고 내버려 두지도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내가 슬며시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집이 고요했다. 원래 할머니가 조용하긴 하지만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산책이라도 나가셨나 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 할머니가 풀을 뽑고 있었다. 그렇다. 문제는 엄마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도 매일 같이 풀을 뽑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나는 냅다 할머니에게 달음박질쳐 다가갔다.
"어어."
할머니는 90도도 아니고 120도는 될 듯한 각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발에 닿을 듯 숙이고 풀을 뽑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조마조마한 자세였다. 그 자세로 할머니는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마당가를 요리조리 휩쓸고 다녔다.
"할머니, 뭐 해?"
"풀 뽑지, 뭐 해."
"냅둬, 할머니. 내가 할게."
"뭐이 냅 둬. 가만 들어앉아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지."
아, 그렇다. 이씨 할머니와 김씨 아줌마는 너무나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쉴 줄 모르는 일복과 열정은 바로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걸 내처 잊고 있었다니.
"할머니 허리 아프잖아."
"이게 죄다 먹을 건데. 내가 허리만 안 아프면 뜯어먹겠는데 허리가 아프니 저 자라기만 하잖여."
그렇게 말하면서도 할머니는 풀을 뽑고, 커다란 돌을 잡고 잠깐 기댔다가 다시 풀을 뽑았다.
도대체 이 집 여자들은 왜 이리 풀을 뽑는지 원!
나는 정말 정말 풀을 뽑기 싫지만 (요양을 하러 온 시골 아니던가?) 할머니까지 나선 마당이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마당의 잡풀을 뽑고, 마당가의 잔대싹을 뜯고, 할머니가 뜯은 민들레를 넘겨받아가며 강제로 햇볕 요양을 해야 했다.
시골에 가고도 한동안은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오거나 엄마와 잠깐의 담소를 위한 것이 아니면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풀을 뽑는 할머니를 혼자 내버려 두기에는 나의 손녀심 (손녀로서의 마음. 주로 공경의 마음이지만 나의 경우 귀엽고 소중한 생명을 품고 있는 마음에 가깝다) 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엔 인상을 찡그리고, 그다음엔 적당히 꼼수를 부리며, 그다음엔 할머니만 빙글빙글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방 밖으로 나가는 게 놀랍도록 쉬워졌다. 거대하고도 투명한 가름 막이 방문에 둘러쳐져 있는 것만 같던 지난날과 달리 방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여는 그 과정이 하나의 순서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창가에 올라서서 엄마를 부르는 대신 직접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가 엄마가 어디 있는지 찾아 나서게 되었고, 민들레가 얼마나 맛있는 풀인지, 잔대싹과 무잔대싹은 무엇이 다른지, 밭에 깨를 뿌리고 나서 왜 짚으로 덮어두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게 신기했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 많은 풀을 다 알고 있는지, 엄마는 어떻게 산을 그렇게 잘 타는지, 이모는 어떻게 그렇게 농사 박사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문 밖으로 자주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할머니와 엄마에게 그 모든 일이 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나에게는, 풀 뽑기 장인인 이씨 할머니와 김씨 아줌마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서울 촌년 임씨 아가씨에게는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쉼이 되었다. 방에 누워 내면을 갉아먹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생명이 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짚으로 덮어둔 밭에서 깨를 빼먹기 위해 애를 쓰는 참새 무리들을 쫓으며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는 그 시간들이 모두 쉼이 되었다.
제발 좀 쉬라며 바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정작 내가 쉼을 얻었다는 게 아이러니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