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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Jul 31. 2022

치매 할머니와 우울증 손녀는 짝짝이 신발

그만큼 반가우시다는 거지

서울에 다녀오는 길, 불과 이틀 만에 오는 시골길이 낯설지 않다.


산에 둘러싸인 덕인지 서울보다 더위도 약하고, 드문드문 보이는 주민들은 언제나처럼 서로의 밭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큰소리로 대화하며 부리나케 깔깔대며 웃고 있다.


엄마의 퇴근 시간을 기다려 차에 몸을 싣고 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옹기종기 모인 가게들을 지나면 금방 꼬불꼬불 이어지는 도로와 하늘을 다 가릴 듯 높이 뻗은 나무들로 가득한 산등성이가 이어진다.


20여분 남짓을 달리면 할머니의 집 대문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짐을 내리다 보면 자동차 들어오는 소리에 궁금증이 일어 재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주뼛대며 할머니가 나타난다.


"할머니! 잘 지냈어?"


할머니를 발견하면 나는 주저 없이 양손을 번쩍 들고 "할머니!"를 큰 소리로 외친다.


"어어."


대답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하다. 나는 그것이 나의 방문이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색한 마음에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표정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 시작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현관으로 들어서며 본 할머니의 신발은 짝짝이다.




할머니의 치매 소식을 들은 것은 몇 해 전이었다.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그래."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첫마디였다. 할머니는 누가 보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병약한 남편과 가난한 형편에 다섯 남매를 키워야 했고, 나이차 많이 나는 6명의 시동생을 건사해야 했으며, 시집살이도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밭일까지 도맡아 하셨으니 할머니만 생각하면 운명이란 야속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물론, 어린 나 역시 시골만 오면 엄마보다도 할머니를 더 쫓아다니며 하루 종일 업어달라, 코를 닦아달라 귀찮게 엉겨 붙어 다녔으니 할머니의 고된 운명에 한몫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천성이 순하고 성실하며 흥이 많고 술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나는 사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치매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며 종종 겁을 먹게 하곤 했는데, 이상하게 할머니의 치매는 무섭지 않았다.


속상하고, 안타깝고, 역시나 가혹한 운명의 멱살을 잡고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를 아주 잃었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던 탓이다.


나의 시골은 할머니의 삶이고, 숨이고, 기억이고, 웃음이다.


그 일부인 기억이 조금 흐트러졌다고 해서 나머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속상해하는 엄마 옆에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서울에 머물렀다. 더 늦기 전에 자주 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 번 서울에 붙박인 몸은 버스와 지하철과 기차와 자가용을 옮겨 타며 먼 길을 가기에는 이미 너무 게을러져 있었다.


그러다 급격히 우울증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하고, 정신을 따라 몸까지 무너져가기 시작하면서 요양차 시골을 찾게 됐다.


사실은 엄마의 부탁 (같은 강요) 때문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현재 서울의 삶과 시골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치매 할머니와 우울증 손녀가 서로에게 낯을 가리다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에 관해 생각하다가 결국은 마주 앉아 살아보고자 입에 약을 털어 넣는다.


참 우스우면서도 기이한 일이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낀 엄마의 운명 역시 멱살을 짤짤 울려버리고 싶어 지지만, 그럼에도 웃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엄마가 나는 사랑스럽다.




땅딸막한 키에 생김새까지 비슷하지만 성(姓)이 다른 삼 세대 세 여자의 기록을 조금씩 남겨보려 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기억을 이어가려는 사람과, 기억을 잃고만 싶은 사람.


어쨌거나 세 여자는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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