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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Sep 06. 2022

턱 구멍 삼대

이거 누구 약이야?

식탁 밑에서 동그랗고 작은 하얀 알약이 하나 발견됐다. 저녁 먹기 전에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알약을 집어 들어 유심히 들여다봤다. 엄마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 중이고, 할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아 창밖에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알약을 식탁에 내려놓고 물어야 했다.


"이거 누구 약이야?"


할머니와 엄마와 나는 셋이 부엌 식탁에 쫄로리 둘러 서서 알약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셋 다 약을 먹는 사람들이고, 셋 다 동그랗고 작은 하얀 알약을 먹는 사람들이었으며, 저녁을 먹기 직전인 걸 보면 분명 아침에 누군가가 떨어뜨린 게 분명했으므로 누군지 모를 셋 중 한 명이 걱정되었다. 이거 없이 하루를 잘 버텼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대체로 동물이란 그렇지 않은가?) 시골 생활을 몇 주 이어가다 보니 생활 패턴이 시골에 맞춰 바뀌기 시작했다. 낮잠을 잘 지언정 아침 7시면 꼭 일어나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종종 엄마 대신 내가 할머니의 심장약과 치매약, 영양제를 챙겨드려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나서기 전에 엄마의 명랑한 목소리가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곤 했다.


"이옥경 씨~"

"왜~"

"이옥경 씨~!!" (엄마의 억양을 활자에 담을 수 없어서 슬플 뿐이다)

"왜애요오~"

"약 드셔야지 또 후딱 들어가 누웠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아침밥을 후다닥 먹고 방에 들어가 누워 있다가도 설렁설렁 걸어 나오셨다. 난 오전 일과 중 이 부분이 가장 좋다. 늦잠을 자느라 놓친 수많은 아침들이 서운할 만큼 좋아한다. 엄마의 위아래를 넘나드는 알 수 없는 억양과 그 억양을 미묘하게 따라 하며 빼놓지 않고 대답해주는 할머니의 콜라보. 먹는 게 느린 나는 식탁에 앉아 밥을 욱여넣으며 두 사람을 크큭대며 바라보는 유일한 관객이다.


"뭔 약을 먹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임에도 할머니는 빼놓지 않고 무슨 약을 먹냐고 물었다. 그러면 엄마는 또 약을 친절히 설명해주고, 할머니가 흘린 약을 주워드리고, 그러면 할머니는 머쓱해하며 한마디 하고.


"이상하네? 잘 먹었는데? 턱주가리가 빵꾸 났는개벼."

"그러게 말이여. 빵꾸가 났는개벼?"

"으하하."


완벽한 아침이다.





할머니는 약을 드실 때마다 꼭 식탁에 손바닥을 쩌억 쩌억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혹시라도 알약이 떨어졌을까 봐 확인하는 거였다. 그 모습이 귀엽다가도 은근히 할머니가 눈치를 보는 듯해 나는 엄마가 출근 준비로 바쁠 때 몰래 할머니에게 과장되게 칭찬을 해드리곤 했다.


"우와, 할머니. 약 그 많은 걸 한 번에 다 먹었어?"

"그럼. 다 먹었지."

"나는 이렇게 나눠서 먹어야 하는데."

"한 번에 먹지 뭐이."


그러면 할머니는 금방 우쭐해져서 먹는 것에 자부심을 보이곤 했는데 약으로 그런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지는 둘째치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전 일과 중 두 번째로 기분 좋은 일정이다.


몇 번은 엄마 몰래 약을 버리기도 했다. 아마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대체로 자신이 버려놓고 절대 자신이 버린 게 아니라고 우겼기 때문이 사실은 알 수 없지만 나는 할머니를 내심 나름의 동지라고 생각했다. 아-아-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버렸다고? 아닌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정말 억울한 표정을 짓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그저 마주 보고 웃을 뿐이다.


할머니는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약을 드실 줄 몰랐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혼자 살 때는 하루 종일 누워 우울에 사로잡혀 있다가 느지막이 일어나 저녁식사와 수면제를 삼키고 다시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시골에 내려간 후로는 아침에 먹는 우울증 약을 빼먹는 일이 손에 꼽을 만큼 줄어들었다. 약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약을 다 챙겨드리고 나면 엄마는 "이옥경 씨~"를 부르던 톤으로 "제야~"를 부르며 나를 소환했다.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우울증에 걸린 딸의 약을 명랑한 얼굴로 꺼내어 건넬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약을 먹을 때면 늘 엄마가 생각난다. 우울증 약이 아니라 감기약이나 생리통 약이어도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그 미묘하게 신이 난 듯한 소리가. 아마도 최선을 다해 만들어냈을 엄마의 의지가 담겼을 그 소리가. 그러다 약을 한 알, 흘리고 나면 중얼거리게 된다.


"턱주가리 빵꾸가 났나벼."


나는 아직도 약을 먹는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나와 할머니는 현상 유지용 약을 먹는데 이제는 엄마만 달라졌다. 치매와 우울증을 잇는 다리였던 엄마가 암이라는 커다란 돌덩이를 지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우울증과 암과 치매가 서로의 약을 챙겨 먹이며 살고 있다. 죽고 싶고, 죽을 것 같고, 죽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는 상태로 세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 있다.


약을 흘리기 1등은 할머니, 2등은 나, 꼴찌가 엄마였는데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다친 후로 엄마가 흘리기 1등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나는 꼴찌로 자체 강등당했다. 순서가 바뀌었으니 이제 내가 외칠 차례다.


삼대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다리인 나의 엄마에게 바로 이렇게 말이다.


"명희 씨~ 약 드세요~"


아직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해맑게 웃지도, 즐거운 의지를 만들어내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약을 꺼내 건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이렇게 살게 해 준 할머니와 엄마의 약 알갱이들이 내 안의 우울증을 조금씩 갉아내고 있었다. 나는 살아갈 것이고, 나의 엄마와 나의 할머니 역시, 서로의 흘린 약을 주워 건네주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게 당장 내일 끝이 나더라도, 즐거운 듯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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