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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Oct 30. 2022

맨발의 청춘

열 살과 여든 살

"할머니!"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는 벌써 현관문을 열고 마당을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신발! 신발 신어요!"


나는 후닥닥 신발을 꿰어 신고 할머니의 고무 슬리퍼를 집어 허겁지겁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눈이 다 녹지 않아 아직 차가운 바닥을 할머니가 맨발로 서 있었다. 바깥엔 손님이 짐을 들고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었다. 손님이 오면, 그러니까 새로운 방문객이 오기만 하면 할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맨발로 일단 문부터 열어 나가고 보았다. 덕분에 나는 손님이 오는 날마다 현관과 할머니의 발을 뚫어져라 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서울에 잠시 다녀올 때마다 할머니는 늘 새로운 사람이 오랜만에 방문한 것처럼 제일 먼저 맨발로 문을 열고 나를 맞아주었다. 내가 언제 서울에 갔고, 언제 다시 온다고 말을 해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할머니에게 나는 늘 새로운 손님, 갑작스러운 방문이 되어 자꾸만 맨발로 뛰쳐나오게 만든 셈이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맨발이 떠오른다. 그리고 맨발에 유달리 길게 자라 있던 새하얀 발톱. 언제까지고 자라기만 할 것 같던 발톱이 너무 길어 아파질 때가 되면 할머니는 발톱깎이 대신 가위를 꺼내와 조심조심 잘라냈다. 나는 지금도 손톱과 발톱을 깎을 때마다 소중한 걸 만지듯 발을 감싸며 조용한 낮의 빛 아래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맨발의 기억은 열 살의 모습이다.


"우리 할머니가 쇠경이었어."


부엌에 앉아 언제나처럼 마당을 내다보고 있던 할머니가 문득 말을 시작했다.


할머니의 할머니, 그러니까 고조할머니가 마당에서 볍씨를 말리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 그만 볍씨가 눈에 들어가고 말았다. 고조할머니는 눈에서 볍씨를 빼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썼지만 통증만 강해질 뿐 빼낼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시골 깡촌이었던지라 고생하고 있는 고조할머니를 보다 못한 큰아들이 바늘을 가지고 나왔다. 고조할머니의 눈에 박힌 볍씨를 바늘로 빼내기 위해서였다.


"못 배운 사람이었지."


고조할머니는 눈이 퉁퉁 부어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병원에 갈 생각은 못했다. 그 땐 그랬다고, 할머니는 그랬다. 덤덤하고 당연하게.


고조할머니는 그 때부터 큰손녀인 할머니를 항상 불러 다녔다. 지금 사는 집쪽을 돌아 올라가는 골에 할머니의 고모가 사셨는데 고조할아버지와 싸운 날이면 꼭 할머니를 불러 고모네 집으로 향하셨다. 그러다 고모네 집에 갈 수 없을 때면 시내로 내려가 남의 집의 밥을 빌어 먹거나 길에서 잠을 잤다.


어려서부터 신발도 없이 맨발로 살고 있던 할머니는 맨발로 시내의 거리를 헤매고, 빌어 먹으러 들어갔다가 쫓겨나고, 남의 집 뒷마루에서 몰래 잠을 자고 도망가는 시간들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왜 그렇게 싸워대는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조할머니와 고조할아버지가 싸울까 전전긍긍했을 어린 할머니가 맨발로 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듯했다. 눈물을 삼키며 자신의 할머니가 내뿜는 울분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밤거리를 헤맸을 어린 소녀는 내내 사라지지 않고 할머니의 마음 한 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쁘게 달려나가는 할머니의 맨발을 자꾸만 보게 되는 것은 발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과 더불어 자꾸만 어느 소녀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상처를 입는 줄도 모르고 거리를 헤매던 두 발이 이제는 반가운 마음을 담아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지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맨발이 더는 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길과 풀길을 맨발로 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머니의 발이 상해선 안 되니까. 그렇다고 그런 할머니를 막아서고 싶지 않다. 할머니의 마음에 꼭꼭 눌러담긴 맨발의 추억이 조금이나마 즐거운 기분으로 덧입혀질 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할머니의 낡은 고무 슬리퍼를 들고 쫓아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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