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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Oct 30. 2022

인연이거나

운명이거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만남에는 조금 멋쩍으면서도 우스운 점이 있다. 할머니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고조할머니는 시각장애인이셨는데 그래서 어디를 갈 때마다 늘 손녀인 할머니를 데리고 다니셨다. 고조할머니가 자주 찾던 곳은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간 집이었다. 어린 할머니는 자신의 할머니의 손을 잡고 먼길을 돌고 돌아 겨우겨우 고모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리고 그 길목에 우연히 지나가게 되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야! 저기 쇠경 지나간다!!"


그 집에는 아들만 여럿이라 꼭 할머니가 고조할머니의 손을 잡고 지나갈 때마다 남자애들이 우르르 뛰쳐나와 나뭇가지를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며 놀리고 못살게 굴었다고 했다.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서러운 때가 많았지만 어린 여자의 몸으로 그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시집 갈 시기가 되자 할머니를 데려가고 싶다며 여러 곳에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날을 잡고 할머니의 혼수처 여러곳을 손수 돌아다니셨다. 그러다 할아버지를 만나 보고, 할아버지가 마음에 든다며 내처 식을 올려버리셨다.


물론 그 후로 할아버지는 폐렴에 걸려 한동안 당장 죽을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 할머니를 병수발의 고통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그것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밑으로 남동생만 일곱 명인 무려 팔형제의 첫째였는데, 어린 할머니에게 내내 쇠경이라며 놀리고 괴롭혀대던 바로 그 남자애들의 형이 바로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래 시집을 와서 보니 그 애들이 시동생들이잖어?"


할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이 허, 참,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엑, 그럼 혼내주지!"


할머니 대신 내가 더 약이 올라 씩씩대며 이야기했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말이 쉽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집에서 쇠경이라고 놀려댄다고 한들 시동생을 혼낼 수 있는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더 기가 막힌 일은 따로 있는데 바로 막내할아버지의 탄생이다. 놀랍게도 증조할머니가 막내할아버지를 임신한 기간과 할머니가 이모를 임신한 기간이 겹친 바람에 할머니는 남이 수발을 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만삭의 몸으로 만삭의 시어머니 수발을 들었다고 했다.


"그럼 할머니는 누가 챙겨줘?"

"누가 챙겨줘. 아무도 안 챙겨주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임신한 몸으로 시부모와 남편과 수많은 시동생들의 끼니를 챙기며 늦은 밤 뒤늦게 잠자리에 옆으로 몸을 누이는 할머니를 상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문지방에 세숫물을 떠다 주어야 세수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할지는 눈에 훤히 보였다.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야속하게 그려지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그 시대의 그런 깡촌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았으므로 시대가 미울 뿐이다.


할머니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엄마가 태어나지 못했을 테니 나는 결국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나기를 뒤늦게나마 바랄 수밖에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그럴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럼 너를 만날 수 없잖아. 안 돼."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나를 살게 하는 건 바로 너 같은 사람들이구나. 친구의 앞에서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눌러담았다.


삶은 다정한 인연과 질긴 악연의 연속인 것만 같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인연을 맺기 전 아주 멀리 살던 시기에도 어린 할머니가 어린 할아버지의 집앞을 매일같이 지나쳤다는 걸 생각하면 인연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일곱 시동생이라는 지금 생각해도 놀랄만한 배경을 생각하면 악연이 아닐까 싶기도 해진다.


할머니의 삶은 두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고, 엄마의 삶은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된다. 내가 감히, 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아직 엄마의 삶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자꾸만 다른 길이 열리길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어느 순간 내가 엄마의 삶도 두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내 삶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힘들어서 어떻게 그렇게 살았어, 할머니?"

"힘들었지."


할머니는 이야기하는 내내 창밖만 보고 있었다. 힘들었지. 그게 다였다. 힘들었다고.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할머니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려줄 뿐이었다.


사는 건 힘들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남들보다 내가 너무 모자란 것 아닌가,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닐까,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런 수많은 혼란스러운 생각들 저편으로 '나는 힘들다'는 단 하나의 감정이 울컥 솟아오른다.


할머니의 앞에만 앉으면 눈녹듯 사라지는 나의 우울과 불안이 결국은 저 한 마디 때문이라는 것을. 할머니 앞에서는 맘편하게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는 안도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모든 할머니의 대화에서 배운다.


"사는 게 힘들지."

"그렇지. 젊은 너는 더 힘들지."


할머니는 그렇게 나를 위로한다. 농구골대에 골을 던져넣듯이. 손목의 반동으로 툭 집어넣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무구한 수련의 결과가 담겨 있는 농구선수처럼.


"지금은 안 힘들어?"

"뭐이 힘들어. 이래 먹을 것도 있고, 너도 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코끝이 찡해질 것만 같아서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할머니의 간식인 요거트를 두 개 집어들어 할머니와 내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할머니 이거 같이 먹자."

"그래, 같이 먹자."


할머니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요거트를 집어 들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요거트를 뜯었다. 언제까지고 할머니가 나에게 '같이 먹자'고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이 '같이'의 감각을 할머니도 함께 느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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