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내려오기도 하는 것
엄마가 처음 시골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일정만 없다면 나 역시도 엄마를 따라 시골에 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내가 사랑하는 곳이므로 군말없이 엄마를 보내주었다.
엄마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고단하기도 했고, 혼자서 가족 뒷바라지를 하느라 지쳐있었기 때문인지 시골에서의 삶에 만족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일을 하러 다녀야 하고, 심지어 운전을 해서 먼 길을 가야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밥을 해드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할머니는 연세와 더불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더는 혼자 살림을 꾸리기가 힘든 상태셨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밥을 하고 식사를 챙기고 설거지를 했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부엌에 들어와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식사 정도는 이제 할아버지가 차려주셔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그런 야속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엄마는 내가 직접 가서 두 분을 차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시골에 내려간 덕분에 할머니는 집안일의 고충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끝이 없는 것만 같던 삼시세끼의 굴레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이다.
할머니는 어려서는 시각장애인인 할머니를 보조하고, 시집을 와서는 남편과 시부모, 일곱 명의 시동생을 키웠으며,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아 성장시켰다. 할머니는 어려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늘 남의 인생을 자신의 책임으로 가두고 살아오셨다. 평생을.
나는 가끔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더 넓은 세상을 꿈꿔볼 기회주차 가질 수 없는 시대도 야속하지만, 너무나 작고 조용한 할머니에게 저런 인생을 설계한 삶 자체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네가 있어서 좋다."
소파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문득 입을 열었다.
"뭐가 좋아?"
"이래 같이 앉아 있으니 심심치 않아서 좋다."
그리고 할머니는 웃었다. 그 웃음에 마음 한편이 찌르르 울리는 듯했다. 지금의 할머니처럼, 젊은 할머니도, 어린 할머니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당연하게 느끼지 않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런 '좋음'들로 이 나이가 들 때까지 그 모진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왈칵 눈물이 솟는다.
내 얘기를 들으면 엄마도 할머니가 문득 건넨 한마디를 꺼내보곤 한다.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냐."
엄마가 시골로 거주를 옮기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며 살기 시작하자 할머니가 그랬다고 했다. 너를 낳아서 참 다행이라고.
"딸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겨우 얼마 전에야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평생을 아들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셨다. 나는 엄마를 향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과 태도를 떠올리면 조금 서운하기도, 조금 울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금방 털어버린다. 어떤 감정은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으 내 것이 아니라 엄마의 것이다.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전해져 내려온 책임이 보내는 감정.
가끔 나는 내 등에 실린 짐을 돌아보고, 그 책임에 실린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 서운함과 우울함, 감사함과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나를 휘감는다. 그 감정들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그 감정들이 내가 책임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든든히 받쳐준다. 나는 오늘도 내 책임의 감정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