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배우는 인생 단면
그토록 심한 멀미만 하지 않았다면
버스는 가급적 타지 않고 싶었다.
나는 평생 멀미를 지독하게 하는데 그 최고봉은 버스였다.
아니다 배가 더했다. 자주 탄 것은 아니라 기억이 덜 할뿐이다.
특히 난폭운전하는 버스를 타면 나는 순식간에 임신 초기 입덧 환자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더더욱 마을 버스는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하므로 멀미가 쉽게 났다.
나의 멀미는 속력과 경사에 정비례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중학교까지는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으로 치면 버스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는데 그때는 다들 걸어다녔다.
버스 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하면(그때는 배차 간격이 기본 15분이었다.)
걷는거나 버스를 타나 집도착 시간은 비슷했다.
가끔 버스 타는 날은 감기 몸살이 심하게 걸린 날 정도였다.
집방향이 비슷한 친구들과 선생님 흉도 보고 친구들 욕도 하면서 걸어다녔던 그 길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었다.
그러다가 설탕 뽑기를 사먹기도 하고 군밤을 까먹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떡볶이도 나누어먹는 우정이 샘솟는 시간이었다.
또 초등학교 동창이었으나 남중으로 진학한 그들을 스쳐지나갈 수 있는, 말은 못해도 눈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기도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서울 시내 한 복판으로 가게 된 것이다. 물론 컴퓨터 추첨의 결과이다.
나는 결코 희망한 바가 없다. 희망하지 않았다.
아침 6시 반이면 집을 나서야 했다. 129번,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버스 번호이다.
화곡동 집에서 종로 2가에 나를 데려다 주는 버스였다.
그 시절 우리학교 주변에는 서울고, 이화여고, 창덕여고, 배재고, 덕성여고, 풍문여고, 중앙고 등이 있었고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129번 버스를 타야만 했다.
흔들리는 만원버스에서 종로 2가에 간신히 내리면 나는 학교 올라가는 길목까지 구역질을 계속 해댔고 교실에 들어갈때 얼굴은 가부끼 화장을 했다고 볼 정도로 하앴다.
몇번은 실제로 토하기도 했었다.(어떻게 치웠는지는 누가 도와준것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정거장에서 그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한달만 지나면 모두 다 얼굴을 알게 된다.
그 중에 멋진 오빠 한 명이 있었는데 다들 그 오빠 옆자리에 서서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때부터도 남자 보는 눈이 조금은 이상했는지 그 오빠 옆의 수더분하고 명랑한 친구오빠가 더 맘에 들더라.
그래도 사람 많은 만원버스 속 힘든 멀미를 그 오빠들을 보면서 조금은 잊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의 힘든 기억은 만원버스 멀미에서부터 시작했고
따라서 나의 오전 수업 시간은 멀미로부터의 회복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성적이 더 올라갈 수는 없었다.
대학을 선택한 기준 중 하나도 집에서의 통학 거리였다.
멀미가 지독하게 심한 나의 상태를 고려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남녀공학 K대를 가고 싶었었다. 친한 친구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데모를 엄청 할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반대하신 부모님의 영향이 80% 였다면
나의 멀미 이력이 나머지 20%를 차지했다.
그때만 해도 지하철이 없었던 시기였고 당시 우리집에서 K대까지는 편도로
못잡아도 1시간 반은 시간이 걸렸고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었다.
이러니 나도 꼭 가겠다고 우겨보고 고집피울 자신이 없었다.
멀미만 하지 않는다면 나의 일생은 바뀌었을게다. 아마도...
교사가 되고서도 아이들과 가는 수학여행이 두려운 이유는 단 하나 멀미때문이었다.
마냥 신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멀미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지친 한 마리의 어린 양일 뿐이었다.
요즈음은 날이 추워서 지하철역에서 걸어오지 않고 마을버스를 탈 때가 종종 있다.
지하철과는 약간의 다른 느낌이다.
같은 점은 내리지 않는데 입구를 막고 있는 사람이 꼭 있다는 점이고(입구에 있는 리더기에 카드를 대기가 힘들다.)
다른 점은 2인씩 앉게 되어 있는 좌석이라 옆에 앉기가 쉽지않다는 점이다.
특히 바깥쪽에 사람이 앉아있으면 안쪽 좌석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뻘쭘해서 그냥 서서 가게 된다는 점이다.
지하철에서는 내 앞자리의 좌석이 나는 순간 빠르게 앉게 되는데 말이다.
물론 지하철은 밖을 볼 수 없고(일부 구간을 빼고는) 버스는 밖을 구경할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흔들림이다.
지하철은 흔들림이 거의 없다.
유명한 침대 광고 카피 문구와도 같다.
버스는 흔들림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코너를 돌때는 더하다.
이런 흔들림이 내 뱃속을 뒤흔들고
나의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그리고는 옆 사람에게 휘청거리게 만들고
여하튼 몸을 가누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손잡이를 힘주어 잡아봐도 내가 나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제어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덩치 큰 사람이 나를 밀게 되면 나는 그냥 나동그래진다.
오늘 퇴근길이 그랬다.
승차하는 나를 덩치 크고 헤드폰 끼고 있는 젊은 남자가 반대로 걸어오면서 밀어버렸다.
힘을 주어 지탱해보겠다고 애는 썼으나 순식간에 의자에 나동그래졌다.
지하철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상황이다.
조금만 덜 춥다면 그냥 걷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이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있다.
아까 나동그래지지 않겠다고 힘을 주어 허리에 약간 무리가 간듯해서 말이다.
버스에서는 절대 휴대폰을 보지도 말고 좌석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고 타야겠다.
아까는 탑승시 카드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좌석 말고 위쪽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마을 버스 세정거장의 거리...
중학교때 같으면 신나게 걸어다녔을 거리...
지금은 티눈때문에 추위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때문에 신나게 걷지는 못하고 있다.
(어제 오늘 달과 토성이 가장 근접하는 우주쇼가 있다. 이번에 못보면 50년은 지나야한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보시라. 달 옆의 밝은 점하나가 토성이다. 누가 과학교사 아니랄까봐 또 못참고 오지랖을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