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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자신없는 것에 도전하기

시도하는 것이 시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2018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 일생 가장 자신없는 것 중 한가지인 그림그리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말이다.

그때는 광화문 근처 사직동에 살 때인데

일주일에 한번쯤 그림을 그리러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글쓰기에는 마구잡이로 두려움이 없는데

그래서 자비출판도 몇 번 해보았는데(물론 별로 팔리지는 않았다. 교보문고에 전시되었던 것으로 만족했었다.)

글만 쓰는 것 말고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해서 전시회를 열거나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책을 나의 정년퇴직 선물로

지인들에게 짠하고 주고 싶었었다.

2018년부터 정년퇴직 선물을 고민하는

이런 앞선 계획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때만해도 브런치같은 스타일의 플랫폼이 없었을 때이고

개인 블러그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는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었다.

왜 그런지는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만...

사진을 잘 찍는것도 힘들고 해서(이제 사진은 스마트폰이 알아서 찍어준다.)

그림을 배워볼까 찾아보다가 어반스케치라는 분야가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정형화된 미술 전문가가 그리는 세밀화나 정물화와는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

그냥 나의 감성을 온전치않아도 쓱쓱 표현해내고 싶었던 차라 어반스케치라는 분야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 분야를 쉽다거나 낮추어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전문가에게 진입장벽이 그래도 낮아보여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켜주었다는 뜻이다.


사직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합정역 근처

화풍이 마음에 드는 작가님을 찾아서

무작정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고

수업을 시작했다.

첫날은 가로줄 긋기, 세로줄 긋기, 물감색 만들기 등으로 시작해서

조금 조금씩 나아지는 날도

왕창 후퇴하는 날도 있었지만

교사가 아닌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서

전혀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도 듣고

다양한 간식도 나누어먹으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나만의 화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주 독특하다못해 누가봐도 그림 못그리는 사람인걸 알아차리게 되는 전형적인 화풍 말이다.(위 그림을 보면 무슨뜻인지 금방 아실듯하다.)

그리고는 집은 신용산으로 이사를 했는데

화실은 문래역 근처로 이사를 갔다. (지하철역에서도 꽤 걷는 곳이었다.)

퇴근 후 나의 저질 체력으로

1호선을 타고

또 2호선을 갈아타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나는 점점 문래역 화실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제대로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채(아직도 그 화실에는 내가 쓰던 파레트와 물감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림에 대한 나의 자신감 회복 프로젝트는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아주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역시 한번 시작한것은 시작조차 하지않았던 것보다는 낫다.

방학을 맞아 여유가 생길 때 한번씩은

스케치를 하던가 채색을 하는 일이 아주 가끔씩 있었다.

이제 소망하던 그림과 함께하는 책을 출간하지는 못한채 2월 28일이면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1년전부터 이곳 브런치에

서툰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글을 쓰게 되었으니

비슷한 마무리는 하고 있는 셈이다.

절반의 성공일지도 모른다.

아들 녀석의 추천으로 오늘 저녁을 과감하게 배달로 결정하고 나니(장어솥밥과 연어구이 솥밥을 시키기로 했다.)

마음과 몸이 급 편해져서

2023년에 스케치해놓은 눈사람에 색을 입히기도 하고(아마도 오늘처럼 하루 종일 눈이 온 날이었을것이다.)

사진첩을 뒤지다가 발견한 서울숲 안내판을 모티브로 한 내 마음의 숲 안내판을 그려보기도 했다.

정년퇴직후 한 시간 정도의 소일거리는 확보한 셈이다.

제일 자신없는 그림 그리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그리고 의미있는 소일거리를 찾는 나의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시도하는 것이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더 나은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


(남편의 희망으로 저녁 메뉴를 바꾸었다.

고등어 조림을 원했는데

집에 있던 가자미 조림으로

어제 먹은 된장꽃게탕을 또 달라는데

얼갈이배추에 두부넣은 된장국으로

그리고 아들의 희망 닭갈비는 배달주문으로

계획과 실행은 조금은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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