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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개팅 주선 일지

이제는 복을 조금 받고 싶다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오랜만에 소개팅을 성사시켰다.

후배가 아는 지인 아드님과 시댁 형님이 아는 지인 조카이다.

둘 다 전공이 비슷하고 연령대도 비슷하고 출신 중고교가 같고 집안 환경도 비슷하니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꽉 차 있으니 소개팅이

잘 될 확률은 꽤 있다고 보여진다.

(서로 사진도 교환했고 잘 알 수 있는 환경에서 만나보겠다고 하는 것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여하튼 둘이 만나서 기분 나쁘고 아까운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 만으로도 다행인 일이다.

소개팅은 잘 되면 기본이고 안되면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을 왜 나는 주선해주는 것일까?


나의 소개팅 주선의 역사는 대학교 때부터이다.

물론 우리때는 고등학생이 소개팅을 하고 이성교제를 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어서

(물론 그 시대에도 유행에 앞서나간 친구들은 있었을 것이다만)

대학교 1학년 때 부산에서 올라오는 처음보는

오촌 아저씨뻘의 서울대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랑

이대 약대에 들어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소개팅을 시켜준 것이 아마 처음이라고 기억된다.

축제를 앞두고 였으니 아마 대학에서의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난 5월 초였을 것이다.

나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오촌 아저씨 친구들을 광화문에서 만나서 어떤 빵집으로 모시고 갔던 것까지만 기억한다.

그리고는 까맣게 그 기억을 잊어버렸었는데

한참을 지나서 내 친구와 그 아저씨의 친구가 사귀고 있다고 했고

대학 졸업 후 1년쯤 뒤에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었다.

나의 첫 소개팅 주선 결혼 커플이다.

물론 나는 결혼식에 참석했고 친구 어머님은 나를 좋아라 하지는 않으셨다.

사위감이 별로 마음에 드시지 않았나보다.

그 시대 소위 운동권 출신이었다.

옷 한 벌을 얻어 입는 것은커녕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친구 어머님 눈칫밥을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두 번째 소개팅 성공은 아마도 대학 시절을 함께 한 남사친에게 내 후배를 소개해 준 것일게다.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서 4학년 봄쯤 소개팅을 시켜주었는데

둘 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시기 동안 열심히 연애를 하고 취업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고맙다고 외국 여행지의

냉장고 부착 자석을 선물해주었던 것 같다.


세 번째는 나의 수제자의 오빠와 우리학교에 발령받아온 신규 선생님을 소개시켜준 것이고

네 번째는 나의 수제자와 우리학교에 발령받아온

신규 선생님을 소개시켜준 것이고

다섯 번째는 내 옆 자리 선생님의 조카와 우리학교에 발령받아온 신규 선생님을 소개시켜준 것이다.

모두들 성품이 훌륭한 사람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의 본능적인 능력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개시켜주는 두 사람이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을 선호한다.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다섯 번까지는 내가 적극적으로 소개팅 그 이후를 듣게 되고 조언을 하게 되고

어느 정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게 된 경우이지만

알아서 둘이 만나라고 하고 전혀 그 뒤를 알아보지 않은 잘 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소개팅을 해서 잘 만나다가 결혼까지 못간 아쉬운 경우도 있다만.


다섯 건이나 소개팅 주선 성공작이 있으니 나는

천국 열쇠를 받은 것과 다름없을 것인가?

(전해지는 그런 말이 있었다.)

만약에 그런 복이 있다면 지금 조금이라도 미리 나누어주면 안될까?

내가 아니라면 나의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나 남편에게라도

그 복을 조금만 미리 주면 안될까?

아들 녀석의 연애가 순풍에 돛단 듯 잘 나가던가

아니면 오늘 나의 면접 결과라도 괜찮던가

(생각보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기죽었다. 특히 남자들... 여자는 나 혼자였던 듯)

남편은 항암치료 결과라도 좋기를 바래본다.

2024년 1월의 믿어지지않는 기적의 홀인원 행운까지도 당겨쓰고 싶은 마음이다.

나도 참 별 일을 다했다.

내 연애는 잘못하고 남 연애나 주선하다니 말이다.

참으로 실리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그것이 나다.

그렇게 태생적 오지라퍼로 태어나고 살아간걸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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