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짝사랑이라니
민성이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잘 생겨서일까? 그 오지랖 때문일까?
나는 그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키가 작아서 도와주고, 잘 못해서 도와주고, 준비물을 안 챙겨 와 도와주고.
솔직히 나만 바라봤으면 좋겠는데
반장도 아니면서 왜 주위 사람을 저리도 챙기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선생님께 혼나는 걸 보면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챙길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혼도 좀 가봐야 되는 거 아닌가.
친한 친구한테 이러는 건 이해하겠지만 여자애들까지 챙기는 모습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민성이를 바쁘게 해야겠다 싶었다.
“너, 내 숙제 좀 해 줄래?”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왜?”
“학원 숙제가 너무 많은데, 네가 내 짝꿍이니까 도와줬으면 하는데?”
하며 숙제 노트를 내밀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알았어.” 한다.
이제 바빠서 남에 건 신경 못 쓰겠지 싶어 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민성이에게 숙제도 시키고 준비물도 내 것까지 부탁했다.
의아해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 이후부터는 정말 다른 아이들을 도와줄 여력이 없어졌다.
누군가가 부탁하기 전에 나는 잽싸게 그의 관심을 나에게로 돌렸다.
늘 성공하진 않았지만 이제 다른 여자와의 차단은 확실하게 한 것 같다.
사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공적인 관계로 묶였다랄까.
아무튼 우리 사이는 그랬다.
그러다 청천벽력 같은 선생님 명령에 나는 세상을 잃은 표정이 됐다.
다음 주부터는 짝꿍을 바꾸라고 하신 것이다.
옆으로 한 칸씩 옮기라고.
그렇지 않아도 호시탐탐 건너편 영주가 민성에게 말을 거는 일이 많아서 거슬렸는데
이제 둘이 짝꿍이 된다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고 누가 뒤통수를 한 대 세 개 친 것 같은 뻐근함마저 느껴졌다.
이건 나도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와서 시무룩한 나를 본 엄마는 어디 아프냐고까지 물었었다.
역시 내 표정은 어두웠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 껌딱지가 되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고하고
늘 재잘대던 나였기에 엄마는 머리를 짚으시며 아프냐고 걱정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에 병을 어찌 알까.
내 짝꿍이 누가 되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나는 굳이 한 칸씩 옮겨야 하는 제도가
몹시 마음에 안 들었고 선생님까지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짝꿍을 바꾸는 날이 되었다.
학교가 가기 싫었고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새 아침은 또 밝았다.
짝꿍을 바꾼 뒤로는 학교생활이 재미없었다.
일주일이 일 년 같았고 민성이가 내 짝꿍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아이가 멀리 떠난 기분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짝꿍이 될 거야.
머리에 아무리 각인시켜 봐도 도무지 하루하루가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민성이와 영주가 대화 소리가 들리면 온 신경이 그쪽으로 갔고
긴장과 초조가 엄습해서 손톱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말로만 듣던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건가?
이게 사랑이라면 정말 끔찍하다.
사랑 중에도 하필 짝사랑이라니.
5화로 이어집니다